근현대 건축물 문화재 등록 과정의 모든 것
근현대 건축물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공간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이 건물들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화려한 고층 빌딩이나 세련된 신축 건물에 비해 초라하고 낡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 벽돌 하나, 창문 하나에도 지난 100년간의 사회적 변화와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실제로 서울역 구역사 앞에 서면, 수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돌아왔던 순간들이 눈앞에 그려진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의 억압 속 출발점이었고, 해방 이후에는 귀환민의 눈물이 흘렀던 공간이었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이산가족들이 다시 만나는 현장이었으며, 산업화 시대에는 수많은 노동자가 이 역을 통해 서울로 유입됐다. 단순히 오래된 건물이 아니라, 한 나라의 근현대사가 집약된 장소였던 것이다.
이처럼 근현대 건축물은 단순히 과거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매개체다. 그러나 동시에 그 건물들은 도시 개발의 가장 큰 희생양이 되기 쉽다. "낡았다"는 이유로 철거되고,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방치된다. 그래서 문화재 등록 제도는 단순한 보존 장치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잇고 미래로 나아갈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1. 근현대 건축물 문화재 등록, 왜 중요한가
1-1. 건축물이 남긴 사회적 기억
근현대 건축물은 그 시대의 사회적 기억을 시각화한다. 예를 들어, 서울 종로에 위치한 옛 국세청 별관 건물은 1950년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세금 제도의 뼈대를 다져온 상징이었다. 건물 자체는 단순한 행정청사였지만, 국가 재정의 초석이 다져진 현장이었기에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1-2. 미래 세대와의 연결 고리
지금 살아가는 세대에게 근현대 건축물은 ‘옛 건물’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50년, 100년 후에는 지금보다 더 큰 가치로 돌아온다. 유럽의 경우, 19세기 산업 건축물이 지금은 주요 관광 자원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에게도 똑같은 기회가 주어져 있다.
2. 문화재 등록의 단계별 과정
2-1. 기초 조사와 실측
문화재청과 지방자치단체는 문화재 등록 예비조사단을 꾸려 해당 건축물의 역사와 건축적 특징을 조사한다.
- 설계자와 건축 연도
- 건축 양식 및 구조적 특징
- 당시 신문 기사나 행정 문서 등 자료
- 현장 실측 및 사진 기록
나는 군산 히로쓰 가옥 조사 현장을 직접 본 적이 있다. 연구자들은 무너진 지붕 밑으로 들어가 석재와 목재를 일일이 확인하고, 기둥에 새겨진 흔적을 확대 촬영했다. 그 모습은 단순한 기록 작업이 아니라, 마치 과거와 대화하는 의식처럼 보였다.
2-2. 가치 평가
문화재 등록의 핵심은 가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 역사적 가치: 시대와 사건을 증언하는가?
- 건축학적 가치: 양식적 독창성, 기술적 의미가 있는가?
- 사회·문화적 가치: 공동체의 정체성과 연결되는가?
서울 구세군 중앙회관(등록문화재 제602호)은 건축적으로 화려하지 않지만, 1950년대 전쟁 직후 복지 활동의 상징이었기에 등록이 결정되었다.
2-3. 주민 의견 수렴
문화재 등록은 지역 주민의 삶과 직결된다. 건축물 소유주 입장에서는 보존이 경제적 부담일 수 있고, 개발을 원하는 주민들에게는 제약으로 느껴진다. 따라서 주민 공청회와 설명회가 중요한 절차다.
현장 인터뷰 발췌 (부산 근대학교 보존 논의 당시)
“학교가 낡아 아이들이 위험하다”며 철거를 주장하는 학부모와,
“이 건물은 우리 마을의 역사 자체다”라고 말하는 주민 대표가 맞서며, 회의장은 한동안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2-4. 등록 심의와 결정
문화재청 산하 등록문화재 심의위원회에서 최종 평가가 진행된다. 이후 관보에 고시되면 등록이 완료된다. 등록문화재는 지정문화재보다 규제는 약하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3. 실제 건물별 사례와 연혁
3-1. 서울역 구역사
- 1925년: 경성역사 준공 (일본인 건축가 츠카모토 야스시 설계)
- 1950~60년대: 전후 재건의 중심 교통지
- 1990년대: 철거 위기 발생
- 2004년: 등록문화재 제284호 지정
- 2011년: ‘문화역서울 284’로 리모델링 개관
“서울역에서 남편을 전쟁터로 보냈습니다. 이 건물이 무너졌다면 제 기억도 무너지는 거죠.” (70대 여성 방문객)
3-2. 군산 히로쓰 가옥
- 1920년대: 일본인 지주 히로쓰가 건립
- 1945년 이후: 방치 → 폐허 상태
- 2000년대: 시민단체 보존 운동 시작
- 2005년: 등록문화재 지정 → 현재 관광지
나는 2019년 여름, 군산을 여행하며 히로쓰 가옥에 들어섰다. 오래된 기와 지붕 틈으로 햇빛이 쏟아지고, 부서진 마루 사이로 잡초가 자라 있었다. 그러나 해설사가 “이 집은 군산의 식민지 수탈 구조를 보여주는 생생한 공간”이라고 말했을 때, 단순한 폐가가 아니라 도시의 상처이자 교훈임을 깨달았다.
3-3. 대구 계산동 성당
- 1899년: 프랑스 신부 설계, 네오고딕 양식
- 1970년대: 개발 압력 → 철거 위기
- 1981년: 사적 제290호 지정
- 현재: 여전히 현역 성당으로 활용
4. 문화재 등록 과정의 갈등
4-1. 재산권과 보상 문제
일부 건축물 소유주는 보존에 반대한다. “내 건물인데 왜 마음대로 못 부수냐”는 반발이 많다. 따라서 세제 혜택, 보수 비용 지원 등 인센티브 제도가 필요하다.
4-2. 관리 예산 부족
등록 후에도 관리가 미흡하면 건물은 방치된다. 실제로 강원도 일부 등록문화재는 관리 인력 부족으로 훼손 위험에 놓여 있다.
4-3. 대중의 인식
시민들이 그 가치를 공감하지 않으면 보존은 힘들다. 따라서 문화재 등록 과정에서 교육, 전시, 다큐멘터리 제작 같은 공감대 형성 활동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5. 해외 보존 사례와 교훈
- 일본: 메이지 시대 건축물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하고 세제 혜택 제공 → 자발적 보존 유도
- 독일: 산업 건축물 보존 후 갤러리·카페로 재생 → 도시 재생과 문화 산업 연계
- 영국: ‘리스티드 빌딩 제도’를 통해 건축 연도별로 등급 부여 → 체계적 관리
→ 우리나라 역시 단순한 ‘등록’에서 그치지 말고, 도시 재생 프로젝트와 연계해야 한다.
구분 | 주요 내용 | 실제 사례 | 특징 및 시사점 |
조사 단계 | 건축 연혁·양식 기록, 실측·사진 | 군산 히로쓰 가옥 | 건축물의 원형과 시대적 맥락 확인 |
가치 평가 | 역사·건축·사회적 가치 분석 | 서울 구세군 중앙회관 | 미적 가치보다 사회적 맥락 중시 |
주민 의견 | 공청회·설명회, 갈등 조율 | 부산 근대학교 건물 | 보존·개발 사이 절충 필요 |
등록 심의 | 문화재청 심의 후 고시 | 서울역 구역사 | 시민운동이 등록 성사 |
사후 관리 | 예산 지원·활용 방안 모색 | 군산 세관, 이바구길 | 도시재생과 관광 연계 |
근현대 건축물의 문화재 등록 과정은 단순한 ‘옛 건물 보존’이 아니다. 그것은 집단 기억을 복원하고 미래 세대와 연결하는 작업이다. 서울역 구역사가 시민 운동을 통해 철거 위기에서 살아났듯, 건축물 하나하나에는 시대의 상처와 희망, 공동체의 서사가 얽혀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재산권 문제, 예산 부족, 주민 반발 등 수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따라서 제도적 장치와 더불어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동시에 보존은 ‘박제화된 건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활용을 통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오늘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단순히 낡은 건물을 남기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 기억을 후손에게 전할 것인가의 문제다. 지금 흘려보내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근현대 건축물은 흔적이 아닌 유산이다. 그리고 이 유산을 지켜내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