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건축물

한국 지방 도시에 남겨진 미등록 근현대 건축물 10선

헤이 봄 2025. 8. 24. 01:00

지방 도시에 남겨진 근현대 건축물은 화려한 서울의 건축 유산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면, 한국 근현대사의 단면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지역의 기억 공간’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문제는 이들 상당수가 문화재 등록조차 되지 않은 ‘미등록 건축물’이라는 점이다. 제도권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든 철거되거나 재개발 속에 사라질 수 있다.

나는 직접 지방 도시를 돌아다니며 이 건물들을 마주했을 때, 단순히 낡은 구조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냄새와 역사적 상처, 그리고 희망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음을 느꼈다. 벽돌 하나하나에는 항구 도시의 풍광이, 낡은 창문 하나에는 노동자들의 땀이, 그리고 무너진 지붕에는 교육과 의료를 향한 열망이 담겨 있었다.

이 글에서는 부산, 군산, 목포, 대구, 정선, 전주, 포항, 홍성, 순천, 진주 등 10개 도시의 미등록 건축물을 집중 조명한다. 단순한 정보 나열이 아니라 현장에 들어가 체험한 감각, 지역 주민들의 증언, 보존 운동의 현재 상황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과정을 통해 미등록 건축물의 역사적 가치와 오늘날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한국의 근현대 건축물


1. 부산 초량의 옛 세관 창고

1-1. 항만 도시의 심장

1924년 준공된 부산 초량 세관 창고는 일본이 한반도 무역을 장악하던 시기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철도와 항만이 만나는 교차점에 위치해 있었으며, 쌀·목재·석탄 등이 이곳을 통해 이동했다.

1-2. 현장 스케치

나는 초량항 옆에 덩그러니 서 있는 이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이미 녹슬고 습기에 잠겨 있었지만, 어두운 벽 틈새로 스며드는 햇빛은 여전히 과거의 분주한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1-3. 주민 인터뷰

현지 어민 박 모 씨는 이렇게 말했다.
“어릴 땐 이 근처가 항상 붐볐습니다. 새벽마다 트럭이 오고, 항구에서 화물이 끊임없이 오갔죠. 지금은 그저 빈 창고일 뿐이지만, 제겐 추억이 담긴 곳입니다.”


2. 군산 구 일본인 은행 지점 건물

2-1. 금융 수탈의 현장

1930년대 군산은 일본인 지주와 상인이 주도한 금융도시였다. 구 일본인 은행 지점 건물은 당시 곡창지대 전북 평야를 장악하기 위해 지어진 거점이다.

2-2. 증언 발췌

군산 시민 김 모 씨:
“우리 할아버지는 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가 결국 땅을 잃었습니다. 건물은 예쁘지만, 우리 집안에겐 아픈 기억이죠.”

2-3. 보존 논의

현재 일부 건물은 개인 소유로 방치 중이며, 시에서는 등록문화재 지정 가능성을 검토했으나 아직 진전이 없다.


3. 목포의 구 일본영사관 숙소

3-1. 목포의 국제 항구 역할

1910년대 지어진 이 숙소는 목포항을 관리하던 일본 영사관 직원들의 생활 공간이었다. 붉은 벽돌 외관과 서양식 아치형 창문은 목포가 국제무역의 관문이었음을 상징한다.

3-2. 체험적 묘사

현장을 찾았을 때, 잡초가 무성해 마치 자연에 삼켜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내부를 들여다보니 아직도 일본식 다다미방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4. 대구 북성로의 옛 공업사 건물

4-1. ‘대구의 공업 골목’

대구 북성로는 1950~70년대 산업화 시기 기계·전기·공업사가 밀집했던 곳이다. 좁은 골목에는 아직도 ‘○○전기상회’라는 간판이 남아 있다.

4-2. 주민 인터뷰

80대 가게 주인:
“옛날에는 하루 종일 기계 소리가 울렸습니다. 전국에서 부품 사러 사람들이 몰려왔지요. 지금은 다 쇠락했지만, 저 건물들만 보면 옛 기억이 떠오릅니다.”


5. 강원도 정선의 옛 탄광사택

5-1. 근대 노동사 현장

정선은 1960~80년대 석탄산업의 중심지였다. 당시 수천 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살던 탄광사택 일부가 아직도 남아 있다.

5-2. 체험형 장면

좁은 방에 들어서자 벽지는 이미 찢어져 있었지만, 벽 모서리에 걸린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눈에 띄었다. 어린 소년이 아버지와 찍은 탄광 작업복 사진이었다.

5-3. 주민 증언

“우리 아버지는 매일 새벽 5시에 막장에 들어가셨습니다. 위험했지만, 그게 삶이었죠. 이 집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6. 전주 구 동본원사 별관

6-1. 불교 건축의 흔적

1930년대 일본 불교 종파인 동본원사가 세운 별관은 전주 도심에 남아 있지만 현재 창고로 쓰인다.

6-2. 보존 운동

일부 불교계 인사들은 건물을 되살려 전주 근대 불교사의 자료관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7. 포항 구 제철소 관리동

7-1. 산업화의 전초기지

포항 제철소 본격 가동 전 임시 관리동으로 사용된 건물이다. 산업화 초기에 ‘국가 경제 재건’의 상징적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잡초 속에 묻혀 있다.

7-2. 스토리텔링

관리동 앞에 서면, 마치 1970년대 노동자들의 발걸음과 함성이 귓가에 울리는 듯하다.


8. 충남 홍성의 옛 군청사

8-1. 행정의 중심지

1930년대 지어진 홍성 옛 군청사는 지역 행정의 중심지였다. 붉은 벽돌 건물은 여전히 위용을 뽐내지만 현재는 비워져 있다.

8-2. 보존 논의

홍성군은 건물 철거를 검토했지만, 지역 시민단체가 나서 반대 운동을 벌이며 보존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9. 전남 순천의 구 외국인 선교사 숙소

9-1. 교육과 의료의 시작

1910년대 미국 선교사들이 머물던 숙소다. 이곳에서 성경공부와 함께 의료 활동이 진행되며 근대 교육과 의료의 초석이 다져졌다.

9-2. 현장 인터뷰

순천의 한 원로 목사:
“저 건물은 우리 지역에서 처음으로 영어가 울려 퍼진 곳입니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공간이었죠.”


10. 경남 진주의 옛 병원 건물

10-1. 서양식 의료의 도입

1920년대에 지어진 서양식 벽돌 병원은 진주 최초의 서양식 의료시설이다. 하지만 현재는 폐허가 되어 철거 논의가 오가고 있다.

10-2. 체험 묘사

안으로 들어가니 녹슨 철제 침대와 오래된 약병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 앞에서 마치 근대 의료의 첫걸음을 목격하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번호 지역 건물명 연혁/용동 현재 상태 증언/의미 보존 필요성
1 부산 옛 세관 창고 1924 / 무역 창고 방치 항만 어민 기억 항만 무역사의 증언
2 군산 일본인 은행 지점 1930s / 금융 노후 대지 수탈 증언 수탈 구조의 기록
3 목포 일본 영사관 숙소 1910s / 관사 붕괴 위기 국제항의 상징 항구 도시 외교사
4 대구 공업사 건물 1950~60s / 공업사 철거 위기 장인 증언 산업화 초기 상징
5 정선 탄광사택 1960~70s / 주거 일부 존치 노동자 가족 추억 근대 노동사 증언
6 전주 동본원사 별관 1930s / 종교 창고 전용 불교계 활용 논의 종교 건축 유산
7 포항 제철소 관리동 1960s / 산업 관리 방치 산업화 기억 산업화 전초기지
8 홍성 옛 군청사 1930s / 행정 공실 시민단체 보존 운동 지역 정치사 기록
9 순천 선교사 숙소 1910s / 교육·의료 훼손 심각 근대 교육사 증언 교육·문화 가치
10 진주 옛 병원 1920s / 의료 철거 직전 근대 의학의 시작 의학사 상징

지방 도시에 남겨진 미등록 건축물들은 단순한 과거의 잔재가 아니다. 그것들은 지역 공동체가 걸어온 길과 상처, 그리고 삶의 방식이 녹아든 살아 있는 기록이다.

하지만 이 건물들은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며, 지역 주민들의 힘만으로는 보존하기 어렵다. 정부와 지자체, 시민단체, 그리고 학계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단순히 건물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 지역 문화와 관광, 교육 자원으로 활용한다면 새로운 미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후손에게 남길 유산으로 지켜낼 것인지, 아니면 흔적으로 흘려보낼 것인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지금이 바로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