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건축물

지자체별 근현대 건축물 보호 정책 비교 분석

헤이 봄 2025. 8. 25. 01:00

근현대 건축물은 단순히 과거의 건물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겪어온 역사적 전환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문화 자산이다. 일제강점기 관사에서부터 해방 이후의 공공청사, 산업화 시기의 공장 건물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각각 한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며 지역의 정체성을 형성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재개발, 인구 감소, 지방 재정의 압박 등으로 인해 상당수 건축물이 제대로 된 관리나 등록조차 받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다.

특히 근현대 건축물 보존은 중앙정부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실제로 최근 들어 각 지자체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근현대 건축물을 문화재 등록, 관광 자원화, 또는 도시재생 프로젝트와 연계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 접근 방식과 성과는 지역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

나는 직접 여러 도시의 건축물 현장을 방문하면서 각 지자체가 마련한 정책의 온도 차를 실감할 수 있었다. 어떤 곳은 오래된 건축물을 지역 브랜드의 상징으로 승화시키는가 하면, 또 다른 곳은 아직도 방치된 건물을 철거 대상으로만 본다. 이 글은 그러한 정책의 차이를 비교 분석하여, 앞으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고민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한국의 근현대 건축물


1. 서울특별시 – 제도화된 등록과 도시재생 연계

1-1. 등록문화재의 확대와 활용

서울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근현대 건축물이 밀집해 있다. 서울시는 일찌감치 등록문화재 제도를 적극 활용해 정동, 북촌, 익선동 등 근현대 건축물 밀집 지역을 보호하고 있다.

1-2. 도시재생과의 연계

서울의 특징은 ‘도시재생 뉴딜 사업’과 건축물 보존을 접목했다는 점이다. 익선동 한옥과 함께 1930년대 건물들을 리모델링하여 카페·갤러리로 활용하는 사례는 대표적이다.

1-3. 현장 체험 스토리

나는 종로구 정동 일대를 직접 걸으며 붉은 벽돌의 경교장과 구 러시아공사관 터를 마주했다. 그곳은 단순한 과거의 잔해가 아니라, 서울이 ‘대한제국의 수도’였음을 증명하는 공간이었다. 주민과 관광객이 섞여 다니는 모습에서 정책의 성과를 체감할 수 있었다.


2. 부산광역시 – 항구 도시의 기억을 살린 보존 전략

2-1. 항만 근대건축의 상징

부산은 개항 이후 형성된 근대 항만도시의 성격이 강하다. 부산시는 구 일본인 가옥, 초량 세관 창고, 영사관 건물 등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하며 보존에 힘쓰고 있다.

2-2. 스토리텔링형 정책

부산의 특징은 ‘항만·무역·이민’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건축물을 이야기화한다는 점이다. 감천문화마을 역시 과거 피난민 주거지를 스토리텔링으로 재탄생시킨 사례다.

2-3. 현장 인터뷰

부산 동구 초량동에서 만난 상인 A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 창고는 어릴 때 늘 보던 건물이에요. 그냥 낡은 건물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가 부두에서 일하던 시절의 기억이 담겨 있죠. 시에서 이걸 보존해줘서 다행입니다.”


3. 대구광역시 – 산업화 기억의 골목 보존

3-1. 북성로와 공업사 건물

대구시는 북성로 일대를 ‘근대산업유산 거리’로 지정하여 공업사 건물을 보존하고 있다. 이는 서울이나 부산과 달리 ‘산업화 시기’의 흔적을 중시하는 정책이다.

3-2. 주민 참여형 보존

대구의 정책은 주민과 청년 예술가가 함께 공간을 리모델링해 활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낡은 공업사가 창작 스튜디오나 전시장으로 변신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4. 전라북도 군산시 – 도시 전체를 역사 공간으로

4-1. 군산 근대건축 집적지

군산은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중심지로, 당시의 일본식 가옥, 은행, 창고가 대거 남아 있다. 군산시는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거리’를 조성해 도시 전체를 박물관처럼 활용한다.

4-2. 관광 연계

관광객이 군산을 방문하면 자연스럽게 근대 건축물 투어를 하게끔 유도한다. 이는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

4-3. 현장 체험

실제로 군산의 구 일본제18은행 지점에 들어섰을 때, 당시 금융권력이 건축으로 구현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높은 천장과 웅장한 외관은 ‘경제적 수탈의 기억’을 보여주고 있었다.


5. 전라남도 목포시 – 문화도시 지정과 건축물 활용

5-1. ‘근대역사문화공간’ 지정

목포는 문화재청으로부터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받아, 구 일본영사관, 근대식 주택들을 보존한다.

5-2. 시민 주도의 보존 운동

목포에서는 시민 단체가 직접 건물 관리에 참여한다. 주민 스스로 건축물 활용 방안을 제안하고, 카페·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는 경우도 많다.


6. 충청남도 공주시 – 행정 건물과 교육시설 중심

6-1. 근대 교육시설 보존

공주시는 일제강점기 사범학교, 구 충청남도청사 등을 중심으로 건축물을 관리하고 있다. 특히 교육 공간의 보존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6-2. 체험 서술

구 도청사 앞에 섰을 때, 나는 마치 일제강점기 지방 행정의 엄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높은 돌계단과 대칭 구조는 권력의 상징이었다.


7. 강원도 정선군 – 탄광 유산의 보존

7-1. 산업유산 등록

정선군은 탄광사택과 광업소 건물을 문화유산으로 지정해 ‘근대 산업유산 테마파크’로 개발 중이다.

7-2. 주민 인터뷰

정선 출신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이 사택은 우리 아버지가 살던 집이에요. 시커먼 석탄 먼지가 늘 있었지만, 그게 삶이었죠. 지금은 박물관처럼 보존된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8. 비교 분석: 지자체 정책의 차이

8-1. 제도화 vs 스토리텔링

  • 서울: 법적 등록과 도시재생 연계
  • 부산·군산·목포: 스토리텔링과 관광 자원화

8-2. 주민 참여 여부

  • 대구·목포: 주민 주도 보존
  • 서울·부산: 지자체 주도

8-3. 보존 대상의 차이

  • 서울: 정치·외교 중심 건물
  • 군산·목포: 일제 수탈 흔적
  • 대구·정선: 산업화 유산

내용 정리 표

지역 주요 건축물 정책 특징 주민참여율 활용방식
서울 정동, 북촌 건물 등록문화재 + 도시재생 제한적 카페, 갤러리
부산 초량 세관, 영사관 항만 스토리텔링 일부 관광 코스
대구 북성로 공업사 산업화 기억, 예술가 활용 적극적 창작 공간
군산 일본 은행, 가옥 도시 전체 박물관화 제한적 관광·교육
목포 영사관, 주택 시민 주도 보존 적극적 게스트하우스
공주 도청사, 학교 교육·행정 중심 제한적 전시·교육
정선 탄광사택, 광업소 산업유산 보존 일부 테마파크

9. 지자체 정책의 성패를 가른 요인들

9-1. 예산 확보와 정책의 지속성

근현대 건축물 보존 정책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예산 확보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중앙정부, 문화재청, 서울시 예산이 동시에 투입되지만, 군산이나 목포처럼 인구가 감소하는 지방 도시는 상황이 다르다. 군산시는 2015년 ‘근대역사문화공간 조성사업’으로 중앙정부 지원을 받으며 성과를 냈지만, 지원 사업이 종료되자 관리 인력과 유지비 부담으로 어려움에 직면했다.

실제로 군산 근대건축물 보존과 관련된 한 공무원은 이렇게 토로했다.
“중앙정부 지원이 끊기면 건물 하나 유지하는 데도 수천만 원이 들어갑니다. 지자체 단독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죠.”

9-2.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

  • 성공 사례: 목포는 시민 주도의 ‘목포 근대문화거리 지킴이’ 활동이 정착되면서 행정 예산 부족을 주민 참여로 메웠다. 주민이 자발적으로 관리에 나서면서 ‘근대문화도시’ 이미지가 강화되었고, 관광객 유입도 꾸준히 늘었다.
  • 실패 사례: 반대로 경상북도의 일부 소도시는 근현대 건축물 보존 계획을 발표했으나, 주민과의 협의 부족, 건물 활용 방안 미비로 결국 철거가 이루어졌다. ‘형식적 보존’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10. 해외 사례와 비교 속 한국 지자체 정책

10-1. 일본의 마치야 보존 정책

일본 교토는 전통가옥 ‘마치야’를 보존하기 위해 지자체 차원에서 세금 감면과 보수 비용 지원을 해왔다. 주민이 건물을 직접 활용할 수 있도록 하여 ‘살아 있는 문화재’로 만들었다.

10-2. 유럽의 도시 보존 모델

독일의 라이프치히는 구 산업건물을 ‘문화 창작지구’로 변신시켜 도시 재생에 성공했다. 공공 예산뿐 아니라 민간 투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점이 특징이다.

10-3. 한국에 주는 시사점

한국 지자체 정책은 여전히 ‘등록 → 관리’에 치중되어 있다. 그러나 해외 사례처럼 재정 지원 + 주민 활용 + 민간 투자 유치가 결합해야 지속 가능성이 높아진다.


11. 현장 경험에서 느낀 정책의 간극

나는 2024년 여름, 대구 북성로를 직접 찾았다. 좁은 골목에 늘어선 낡은 공업사 건물들은 겉보기에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했지만, 안쪽에는 청년 예술가들이 작업실로 개조해 쓰고 있었다. 벽돌 벽 사이에서 들려오는 기계 소리와 기타 연주 소리가 묘하게 어울리며, 이곳이 단순한 폐허가 아니라 ‘살아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반면 같은 해 겨울, 전남의 한 소도시에서는 오래된 일본식 창고가 철거 직전의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보존 필요성’을 이야기하던 주민들은 결국 행정의 무관심 속에 철거 소식을 접해야 했다. 이 극명한 차이는 단순히 건물의 가치 차이가 아니라, 지자체 정책의 실행 의지와 주민과의 소통 여부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12. 앞으로 필요한 정책 방향

12-1. 법적 등록 확대와 지원 제도 강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는 근현대 건축물은 매년 늘고 있지만, 여전히 상당수 건축물이 미등록 상태다. 특히 지방 소도시에 있는 건물들은 지정조차 되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다. 등록 절차 간소화와 더불어 ‘지자체 지정 문화재’ 제도를 도입해 지역 차원에서 보존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12-2. 민간 투자 및 활용 모델

카페·게스트하우스·전시 공간 등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민간 투자를 유치하는 방안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건축물 보존에 참여한 기업에 세금 감면, 브랜딩 혜택을 주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12-3. 주민 주도형 관리

무엇보다 핵심은 주민 참여다. 건축물이 지역민의 기억과 생활 속에서 살아 움직일 때만이 보존은 의미를 가진다. ‘기억을 나누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지자체별 근현대 건축물 보존 정책을 비교하면서 분명해진 사실은 하나다. 보존은 단순히 건물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지키는 일이라는 점이다. 건물 속에 담긴 삶의 흔적, 공동체의 기억이 이어질 때 건축물은 비로소 유산으로 남는다.

서울처럼 제도화된 틀, 부산·군산처럼 관광 자원화된 사례, 목포처럼 주민 주도의 활동, 정선처럼 산업 유산을 브랜드화한 방식 등은 모두 귀중한 모델이다. 하지만 이 모델들이 전국적으로 고르게 확산되려면, 법·예산·주민 참여라는 세 축이 균형 있게 자리 잡아야 한다.

앞으로 각 지자체는 ‘지역의 특수성’을 존중하면서도 ‘전국적 네트워크’를 통해 보존 경험을 공유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근현대 건축물은 후손들에게 단순한 흔적이 아니라 공동체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은 살아 있는 유산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