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시작한 제로웨이스트 라이프: 새로운 삶의 시작
내가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퇴사를 한 직후였다.
회사에 다닐 땐 하루하루 생존하듯 살았고, 환경을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플라스틱 도시락을 데워 먹고, 배달 음식을 일주일에 다섯 번은 시켜 먹었다.
출근길엔 늘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다녔고, 점심시간엔 편의점에서 간편식과 포장 도시락을 골랐다.
퇴근 후엔 쓰레기를 대충 봉투에 쓸어 담아 버리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8년을 살았다.
하지만 퇴사 후 멈춰선 일상에서, 나는 문득 내가 소비해온 수많은 물건과 버린 것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과 함께
‘제로웨이스트’라는 단어가 삶의 키워드로 들어왔다.
1. 퇴사 후, 소비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가장 먼저 달라진 건 시간과 감각이었다.
오랜 시간 ‘일’에만 집중해온 내게 주어진 낯선 공백 속에서,
나는 내 삶의 소비 습관과 패턴을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마트에서 산 음식을 절반 이상 버리고 있었고,
쇼핑몰에서 사놓고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이 쌓여 있었다.
욕실엔 화장품 샘플과 빈 용기들이 가득했고,
주방엔 배달 음식 플라스틱 용기들이 넘쳐났다.
퇴사 후 처음으로 나는 내가 만든 ‘쓰레기’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소비’가 아니라 ‘앞으로의 선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 접하게 된 것이 바로 제로웨이스트(Zero Waste)였다.
2. 제로웨이스트라는 개념이 내게 준 충격
처음 ‘제로웨이스트’라는 단어를 들었을 땐
‘쓰레기를 하나도 만들지 말자는 운동인가?’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볼수록 이건 단순한 쓰레기 줄이기가 아니라,
삶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철학이었다.
‘필요하지 않다면 사지 않는다.’
‘쓸 수 있다면 버리지 않는다.’
‘한 번 쓰고 버리는 구조를 의심한다.’
‘버린 이후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를 고민한다.’
이런 원칙들이 낯설면서도, 어딘가 내가 원하던 삶의 방향처럼 느껴졌다.
소비를 줄이면서도 만족은 높이고,
물건을 아끼면서도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이 개념은
‘퇴사 이후의 삶’을 어떻게 꾸릴 것인가에 대한 힌트를 주었다.
3. 내가 처음 실천한 제로웨이스트 루틴 5가지
① 장바구니 들고 장보기
퇴사 후 마트보다 시장에 더 자주 가게 되었다.
장을 볼 때 비닐 대신 천 가방을 들고 다녔고,
과일은 손으로, 두부는 다회용 용기에 담았다.
그렇게 하면서 장보는 시간은 더 느려졌지만,
선택은 더 신중해졌고 버리는 음식도 줄었다.
② 배달 대신 직접 요리하기
퇴사 전엔 요리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퇴사 후, 요리는 하루의 중심이 되었다.
식단을 계획하고, 장을 보고, 직접 요리하는 시간은
나의 시간 감각과 리듬을 되찾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달 음식 없이 한 달을 살면서 쓰레기양이 절반으로 줄었다.
③ 텀블러와 개인 수저 세트 사용
밖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땐 텀블러를 들고 다녔다.
외출할 땐 작은 파우치에 수저, 빨대, 손수건을 챙겼다.
이 작은 변화만으로도 일회용 컵과 수저를 거의 안 쓰게 되었고,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항상 들고 다니는 거야?”
“어디서 샀어? 나도 사볼까?”
이런 대화가 자연스럽게 환경 이야기로 이어졌다.
④ 욕실을 비우고 고체 제품으로 전환
플라스틱 용기로 가득했던 욕실에서
나는 고체 치약, 고체 샴푸, 천연 비누로 바꿔나갔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욕실이 심플해지고
공간이 여유로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쓰레기통을 비우는 횟수도 줄었다.
화장실에 플라스틱 쓰레기가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다.
⑤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모으기’ 실험
한 달 동안 나오는 쓰레기를 투명 봉투에 모아보기로 했다.
커피포장지, 택배 포장, 영수증, 과자봉지, 스티커…
내가 무심코 만든 쓰레기를 한눈에 보니 충격이었다.
이 실험은 나의 소비 습관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다.
4. 실천하면서 느낀 어려움과 극복 방법
물론 처음부터 모든 게 쉬운 건 아니었다.
특히 아래 세 가지는 지금도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가족과의 마찰
“왜 그렇게까지 해야 돼?”
“이거 하나 버린다고 세상이 바뀌겠어?”
하지만 나는 강요 대신 대화를 선택했다.
‘이걸 줄이면 음식물 쓰레기도 덜 나와서 벌레도 안 생기더라’,
‘이렇게 장보면 한 번에 오래 먹을 수 있어’라는 식의
현실적인 이유를 들며 설득했고, 조금씩 수긍을 이끌어냈다.
친환경 제품의 높은 가격
유기농 세제, 비건 화장품, 제로웨이스트 제품은 비싸다.
하지만 나는 소비 횟수를 줄이고, 한 번 살 때 오래 쓰는 방식으로 극복했다.
또한 주변과 나누는 방법도 찾았다.
친구들과 함께 나눠 구매하거나, 중고 제품을 활용했다.
완벽하지 않다는 좌절감
가끔은 포장을 피할 수 없고,
때로는 플라스틱을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이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100명이 완벽하게 실천하는 것보다,
1,000명이 불완전하게라도 실천하는 게 더 중요하다.”
퇴사 후 내가 찾은 새로운 목표 – 지속 가능한 삶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며 나는 ‘지속 가능한 삶’이라는 가치를 발견했다.
그것은 더 이상 일회용처럼 살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소비와 버림의 루틴에서 벗어나
매일의 선택과 소비가 의미 있게 쌓이는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나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제로웨이스트 실천기를 기록하는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다.
나의 경험을 나누고, 함께 실천하는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퇴사 후의 삶이 훨씬 단단하고 유의미해졌다.
혹시 지금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면,
혹은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고 있다면
제로웨이스트는 좋은 시작점이 되어줄 수 있다.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삶을 다시 ‘디자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