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현대 건축물 보존, 지방 소도시에서 만난 기록
한국의 근현대 건축물은 서울과 대도시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서울보다 더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지방 소도시 곳곳에, 시간의 더께가 고스란히 내려앉은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대부분은 알려지지 않은 채 주민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거나, 방치된 채 재개발의 그림자 아래 놓여 있다. 그런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근현대사의 맥락과 사람들의 삶이 조용히 새겨져 있다.
필자는 지난 몇 달간 전라남도, 경상북도, 충청남도의 작은 도시들을 직접 탐방하며, 그 속에 숨어 있는 근현대 건축물들을 기록해왔다. 이들은 대부분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고, 누군가에겐 낡은 건물일 뿐이다. 하지만 그 공간을 직접 걸으며, 이야기를 듣고 기록해보니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살아있는 역사적 기록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글은 그 여정의 일부이자, 지방이라는 공간에서 만난 보존의 가능성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은 산문이다.
1. 전라남도 고흥 – 한 약방의 마지막 봄
폐허가 된 거리 끝, 붉은 벽돌 건물
고흥읍내 한적한 골목. 누구의 발걸음도 거의 닿지 않는 이곳에 붉은 벽돌로 된 2층짜리 건물이 조용히 서 있었다. 처음엔 무심코 지나칠 뻔했지만, 문 위에 '○○한약방'이라는 희미한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건물 안은 출입금지 테이프로 막혀 있었지만, 창문 너머로 보이는 약장과 진열대는 1970~80년대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인근 식당에서 일하던 아주머니에게 물었더니, “이 건물은 진짜 약사 선생이 직접 지은 거예요. 약도 잘 짓고, 가난한 사람들 약값 안 받기로 유명했죠.”라고 했다. 건물은 1972년에 준공된 근대 양식의 구조로, 당시 고흥에서는 보기 드물게 철근과 벽돌을 함께 사용한 형태였다.
문화재 등록은 되지 않았지만…
고흥군청에 문의했을 때 돌아온 답변은 간단했다. "문화재로 등록된 바는 없습니다. 개인 소유 건물이라 관리가 어렵습니다." 그저 하나의 오래된 건물로 취급되고 있었지만, 이곳은 분명 지역 주민들에게 기억의 장소였다.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건물은, 보존이라는 제도보다 더 강한 ‘기록의 가치’를 지닌다. 문화재가 되지 않아도, 마을 공동체에겐 중요한 유산이다.
2. 충청남도 논산 – 잊힌 여관, 그리고 그 속의 시간
1950년대 유일한 여관 건물, ‘○○여관’
논산역에서 도보로 약 10분. 오래된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자, 회색 페인트가 벗겨진 작은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간판은 떨어졌고, 벽면엔 ‘여관’이라는 글자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내부를 들여다보니 목재 계단이 삐걱거렸고, 방 한 칸에는 장판 대신 황색 시멘트 바닥이 그대로였다. 창문은 나무틀에 유리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현지 주민에 따르면, 이 여관은 1954년에 문을 열어 논산 군부대 가족이나 면회객들이 이용하던 숙소였다고 한다. 좁은 복도, 허름한 객실, 그리고 골목 끝 빨래터까지. 하나하나가 당시 서민들의 삶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
누가 이 건축물을 기억해줄 것인가?
안타깝게도 이 건물은 몇 달 내 철거가 예정되어 있었다. 주인은 타지에 살고 있었고, 별다른 보존 계획은 없다고 했다. 나는 마지막 기록을 남기기 위해 건물 외관과 내부를 모두 촬영하고, 도면을 직접 그려보았다. 그것이 이 공간이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 경상북도 영주 – 학교에서 식당이 된 공간
1930년대 초등학교, 지금은 시골 밥집
영주시 풍기읍에는 과거의 초등학교 건물을 개조해 운영 중인 작은 식당이 있다. 초등학교는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지어졌고, 지금은 ‘○○식당’이라는 이름으로 지역 어르신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기와지붕과 높은 창문, 나무로 된 교실 출입문은 모두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고, 벽 한 쪽에는 교사들의 흑백 단체 사진이 아직도 걸려 있었다.
필자가 이 식당을 찾았을 때, 주인 할머니는 “그냥 바꾸지 않고 쓰는 게 좋아요. 이 문도 80년도 넘었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 공간은 단지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라, 기억을 이어가는 장소였다.
자발적 보존, 제도적 지원은 전무
문제는, 이 식당 같은 자발적 보존 사례가 행정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문화재 등록이 아니면 지원금도 없고, 유지 보수에 대한 도움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건축물은 주민들에 의해 조심스럽게 지켜지고 있었다. 이는 제도보다 ‘마음’이 앞선 보존의 사례였다.
4. 보존을 위한 기록, 그리고 시민의 역할
나의 기록 방법 – 눈, 메모, 사진, 대화
근현대 건축물 보존의 첫 단계는 '기록'이다. 나는 탐방을 나설 때 항상 카메라와 수첩을 챙긴다. 건물의 외관, 구조, 소재, 색상, 손잡이 모양까지 세세하게 적고 사진으로 남긴다. 주민 인터뷰는 필수다. 그들이 말하는 ‘추억’은 그 어떤 도면보다도 생생한 가치를 지닌다.
특히, 폐가처럼 보이더라도 누군가에겐 첫 직장의 공간이었거나, 가족의 마지막 시간을 보낸 장소일 수 있다. 기록이 없다면, 그 가치는 영영 사라진다.
지방 소도시에서 시작된 작은 움직임들
최근 몇몇 지방 도시에서는 이러한 건축물을 기록하고 보존하려는 시민 모임이 생겨나고 있다. 고흥의 '골목아카이브', 논산의 '기억의 집 프로젝트', 영주의 '학교, 그 이후' 같은 사례들이다. 이들은 건축 전문가가 아니지만, 카메라와 펜을 들고 지역을 돌아다니며 ‘보이지 않는 유산’을 수집한다.
공공의 보존보다, 개인의 기억이 먼저 움직인다는 점에서 이 흐름은 매우 의미 있다. 지방 소도시에서 시작된 이 작은 기록의 움직임이, 언젠가는 더 큰 제도적 보존의 흐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근현대 건축물은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역 사회의 기억과 정체성을 담은 ‘살아 있는 공간’이다. 특히 지방 소도시의 건축물들은 도시화의 압력에서 벗어나 오히려 더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은 문화재로 등록되지 못한 채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기록과 관심의 부재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 직접 찾아가 걷고, 보고, 듣고, 기록하는 것. 그것이 사라지는 것을 붙잡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금 남겨야 미래가 존재한다.
지방 소도시에서 시작된 이 작은 기록은, 결국 ‘우리의 문화’를 지켜내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