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현대 건축물과 함께 걷는 우리 동네 탐방기
언제부터였을까. 우리는 "오래된 건물"을 보면 철거를 떠올리게 되었다. 낡았고, 효율이 떨어지고, 시대에 뒤처졌다는 이유로. 그런데 오래된 건물이 낡은 것만은 아니었다. 세월이 켜켜이 쌓인 그 자리에, 어느 날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본 그 창문 너머에, 우리는 의외로 많은 이야기와 정서를 발견하곤 한다.
나는 서울 외곽의 작은 동네, 강북구 수유동에 산다. 이곳은 재개발 바람이 불지 않은 채 수십 년을 지나온 곳이다. 매일 걷는 골목길에 붉은 벽돌집이 있고, 오래된 문방구가 있고, 양옥과 한옥이 혼합된 특이한 구조의 주택들이 있다. 대부분은 1960~70년대에 지어진 근현대 건축물이다.
이 글은 내가 직접 발로 걷고, 눈으로 보고, 주민들과 대화하며 정리한 우리 동네 근현대 건축물 산책기’다. 단순히 건물의 구조와 외형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깃든 사람의 삶과 기억, 그리고 우리가 왜 지금 이 건물들을 다시 돌아봐야 하는지를 함께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금부터, 당신을 내 동네 골목으로 초대하겠다.
1. 수유3동 ㅁㅁ양옥 – 붉은 벽돌 속 첫 TV가 들어온 날
마주한 순간의 감정
수유3동의 오래된 골목길을 걷다가 맞은편에 유난히 단단하게 생긴 붉은 벽돌집이 눈에 띄었다. 흔한 다세대 건물이 아니라, 2층짜리 독립 양옥이었다. 철제 대문 옆엔 ‘1976’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고, 집 앞 작은 화단에는 장독대가 놓여 있었다.
집 앞에 계시던 어르신께 인사를 드리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우리 집이야. 저기 저거 봐. 저 벽돌, 전부 아버지가 직접 시공한 거야. 처음 이 집에 TV 들어왔을 땐 동네 사람들이 다 모였어."
건축 구조와 공간의 흔적
이 건물은 1970년대 중산층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벽돌조 양옥 2층 구조로, 1층은 마루가 중심이었고, 2층은 전면 베란다와 다락방이 있었다. 특이한 점은 화장실이 외부에 있다는 것. 당시에는 위생 개념보다는 공간 활용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양옥은 문화재도 아니고 보호 대상도 아니지만, 주인의 기억 안에서는 명백히 그 시대의 상징이었다. 기록하지 않으면 곧 사라질, 그런 건축물이었다.
2. 번동 구판장 – 동네 경제의 중심이던 작은 공간
과거와 현재가 겹쳐진 공간
번동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 뒤편에 자그마한 1층짜리 건물이 하나 있다. 외관은 허름하고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구판장’이라는 오래된 간판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마치 누군가 지우려다 남긴 듯한 흔적이었다.
이곳은 1970~80년대, 농협이 운영하던 구판장이다. 마을 어르신들은 여전히 이곳을 "옛날에 쌀 사던 데"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던 어르신께 물었다. “여기 예전에는 줄도 섰어. 설탕 배급하던 날에는 여기가 북적북적했지.”
생활 속 공공 건축물의 의미
이 구판장은 기능적으로는 매우 단순했다. 사각형 평면 구조, 정면 셔터형 출입구, 내부 선반. 그러나 공간적으로는 당시 지역 경제, 물류, 사람 간 관계가 집약되어 있던 장소였다.
건물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기록해야 할 사회적 기능을 담고 있는 건축물이다. 그 기능이 사라진 지금, 건물은 존재하지만 의미는 점점 지워지고 있다.
3. 미아동 ㄱ여관 – 사라진 숙소, 남겨진 이야기
외진 모퉁이에서 만난 풍경
강북구 미아동의 오래된 골목. 큰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좁고 휘어진 골목길 끝에 ‘ㄱ여관’이라는 작은 간판이 달린 낡은 2층 건물이 눈에 띈다. 철제 계단과 반쯤 뜯긴 간판, 그리고 낡은 유리문. 현재는 운영하지 않고 있지만, 내부는 여전히 당시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내가 이곳을 찾았을 때, 우연히 옆 건물에서 자란 청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땐 이 골목을 지나가면서 이 여관 창문에 불이 켜진 걸 보는 게 무서웠어요. 늘 누군가 살고 있었던 느낌이었거든요.”
일상의 흔적이 된 건축물
이 여관은 1970년대 말, 당시 직장인이나 상경자들을 위한 저렴한 숙소였다. 내부는 총 7개의 객실, 좁은 복도, 공용 화장실이 있었고, 창문은 대부분 골판지로 막혀 있었다.
이 여관은 지금 철거 대상은 아니지만, 활용도도 거의 없어 방치 상태에 가깝다. 그러나 건축물 자체보다는, 거기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 공간을 가치 있게 만든다.
4. 골목의 구조 자체가 살아 있는 건축물이다
근현대 건축물은 ‘단독 건물’만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건축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박공지붕, 붉은 벽돌, 목재 기둥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사실 건축물은 단독적인 구조물에 그치지 않는다. 골목의 결, 건물 간의 간격, 입면 구성 방식도 그 시대의 건축을 말해준다.
수유동의 일부 골목은 폭 1.8m 남짓으로, 유모차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너비다. 이는 1970년대 급속한 주거지 조성 과정에서 나타난 ‘즉흥적 건축 행위’의 산물이다. 당시엔 설계보다 필요한 공간을 먼저 만들었고, 그 결과 독특한 골목 구조가 형성됐다.
보존은 전체 흐름을 잇는 일
따라서 보존은 단지 예쁜 건물 하나를 남기는 일이 아니다. 골목의 흐름, 조망, 분위기, 거리감각까지 함께 기록하고 남겨야 한다. 동네의 구조가 곧 건축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진짜 의미 있는 보존을 시작할 수 있다.
건축물 건축 시기 및 특징
수유3동 | 벽돌 양옥 주택 | 1976년 | 거주 중 | 붉은 벽돌, 외부 화장실, 직접 시공 |
번동 | 구판장 | 1970년대 | 폐업, 방치 | 공공 물자 배급 기능, 주민 기억 |
미아동 | 여관 | 1970년대 후반 | 폐업, 방치 | 저렴 숙소, 골목 이야기의 일부 |
전체 골목 | 주거 밀집 지역 | 1960~70년대 | 원형 유지 | 골목의 폭, 거리 구성 방식이 특징 |
근현대 건축물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초라하고 낡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 공간의 기억,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우리 동네 골목길에 숨은 이런 건축물들은 문화재가 아니기에 보존되지 않는다. 행정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도시개발의 압력에 밀려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직접 걸으며 만났던 그 건물과 사람들의 이야기는, 단지 한 장의 사진이나 기사보다 더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작은 기록자가 되어야 할 때다. 골목을 걷고,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적고, 기억을 공유하는 것. 그것이 곧 근현대 건축물을 지키는 첫 걸음이자, 우리가 도시를 사랑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