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건축물

한국의 근현대 건축물, 문화재로 등록되기까지의 절차

헤이 봄 2025. 8. 5. 03:00

"문화재는 왜 그저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보호받는 걸까?"
이런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처럼 들릴 수 있지만, 한국의 도시 곳곳에서 철거되는 근현대 건축물들을 보면, 이 물음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근현대 건축물은 대부분 20세기 초·중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산업화 과정을 겪으며 지어졌다. 이 건물들은 특정 시기의 건축 양식뿐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기억과 시대적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로 등록되어 법적 보호를 받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이며, 대부분은 ‘문화재가 아니기 때문에’ 보존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그렇다면 이 건축물들이 어떻게 하면 문화재로 등록될 수 있을까?
등록문화재가 되기 위해선 어떤 기준과 절차를 거쳐야 하며, 누가 등록을 요청하고, 누가 심의하고, 어떤 요소들이 최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가?

이번 글에서는 내가 실제로 ‘등록문화재 지정 준비 과정’에 관여했던 한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에서 근현대 건축물이 문화재로 등록되기까지의 실질적인 절차와 단계들을 체계적으로 살펴본다. 또한 등록 이후의 관리와 활용까지 연결된 이야기를 통해, 보존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1. 등록문화재란 무엇인가?

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의 차이

먼저 문화재의 유형부터 살펴보자. 한국에서 문화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 지정문화재: 국보, 보물, 사적 등 고유한 역사·예술·학술적 가치를 지닌 유산
  • 등록문화재: 근현대 유산 중 보존 가치가 인정되지만 상대적으로 제도적 문턱을 낮춘 유산

즉, 등록문화재는 보존은 필요하지만, 고도한 예술성이나 유일성이 없더라도 등록 가능한 제도적 장치다.
2001년 「문화재보호법」 개정으로 신설되었고, 주로 19세기 말부터 1960~70년대까지의 건축물이 대상이다.

등록문화재의 법적 보호 수준

등록문화재는 지정문화재보다 규제 강도가 낮다. 예를 들어,

  • 소유자의 동의 없이 강제 등록 불가
  • 일부 구조 변경 가능
  • 복원보다는 현상 유지 중심
  • 행정적 지원은 제한적이나 보조금 신청 가능

따라서 현실적으로 등록문화재는 ‘유산 보호의 최소한의 제도’로 작동하고 있다.


2. 실제 등록 절차: 시작부터 지정까지의 전 과정

1단계: 문화재 등록 신청 또는 제안

등록 절차는 일반 시민, 단체, 지자체, 전문가 누구나 문화재청 또는 시·도 문화재위원회에 ‘등록 제안서’를 제출하면서 시작된다.
이 서류에는 다음이 포함된다.

  • 대상 건축물의 위치와 사진
  • 건축 연도 및 역사성
  • 건축 양식과 구조
  • 지역사회와의 관계성
  • 현재 상태 및 보존 가치

사례: 내가 참여한 ○○동 근대 주택의 등록 제안서에는, 1947년 건축된 일본식 목조 구조와 이후 독립운동가 자택으로 사용된 기록, 주민 구술 증언까지 첨부되었다.

 

 

2단계: 현장조사 및 문화재청 사전 검토

제안서가 접수되면 문화재청 또는 지역문화재위원회는 현장조사단을 파견하여 실사를 진행한다.

  • 구조적 안전성
  • 원형 보존 정도
  • 변형 여부
  • 도시 맥락에서의 상징성

현장조사 후에는 1차 예비 평가를 통해 등록 절차로 진입할지 여부를 판단한다.
이 단계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많다. 가장 흔한 이유는 “형태 변화가 크다”, “건축 연대가 불분명하다”, “기록이 없다”는 이유다.

 

3단계: 문화재위원회 심의

이후 문화재청 산하 문화재위원회에서 전문가 심의가 진행된다.
위원회는 건축, 역사, 지역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위원 7~10명으로 구성되며, 아래 항목을 중점 심사한다.

심의 항목평가 내용
역사성 사건, 인물과의 연관성, 시대 반영 정도
예술성 건축 양식, 디자인, 독창성
보존성 원형 유지 정도, 관리 가능성
상징성 지역 정체성과의 관계성
활용성 향후 공공 또는 문화적 활용 가능성
 

사례: 위원 중 한 명은 “이 건물은 평범하지만, 근현대 서민 주거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상징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했다.

 

4단계: 문화재청 고시 및 등록 확정

심의 통과 시, 문화재청장이 등록을 고시한다.
등록 후에는 해당 건축물은 ‘등록문화재 제○○호’로 번호가 부여되고, 각종 정보가 공개된다.
이로써 정식 문화재로서의 지위를 갖게 되며, 보존 지침과 변경 신고 의무가 발생한다.


3. 등록 이후: 관리, 활용, 책임

소유주의 권한과 의무

등록문화재는 민간 소유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강제 수용이나 철거금지 등의 규제는 약한 편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의무는 생긴다.

  • 건물 훼손, 이전, 철거 시 신고 의무
  • 구조 변경 시 문화재청 승인
  • 보수 시 문화재청 보조금 신청 가능

보조금은 최대 70%까지 지원되며, 용도 전환이나 공공활용을 전제로 하는 경우에는 별도 지원책도 존재한다.

활용의 어려움과 기회

등록문화재가 된다고 해서 모두 잘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 건축물은 오히려 더 이상 사용하기 어렵고, 관리만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잘 활용되면 지역 문화공간, 전시관, 북카페, 커뮤니티 센터 등으로 재탄생한다.

예: 서울 성북구의 ○○집은 등록문화재 지정 후 북스테이 형태로 리모델링되어 시민 개방형 공간으로 바뀌었다.


4. 제도적 한계와 개선 필요성

보존 의지가 없으면 등록도 어렵다

등록문화재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소유주의 동의가 필수’라는 점이다.
즉, 아무리 가치가 있어도 소유자가 철거를 원하면 제도적으로 강제할 수 없다.

이는 민간 재산권 보호 원칙 때문이지만,
그 결과 수많은 근현대 건축물이 제도 밖에서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낳고 있다.

제도적 지원과 활용 모델 부족

등록 이후에도

  • 예산 부족
  • 운영 주체 부재
  • 콘텐츠 기획 미비
    등으로 인해 등록만 되고 방치되는 사례가 많다.

따라서 단순 등록보다는

  • 운영 모델 제시
  • 시민 참여형 공간 설계
  • 지방정부와 연계된 프로그램 기획
    등의 연속성 있는 지원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한국의 근현대 건축물 등록문화제 절차 요약

제안 및 신청 시민·단체가 등록 제안서 제출 문화재청, 지자체 사진, 역사성, 건축양식 포함
현장조사 실사단 파견 후 현상 확인 문화재청 구조 안전성, 원형성 등
위원회 심의 전문가 위원회 평가 문화재위원회 역사성, 상징성, 활용성
등록 고시 최종 고시 후 등록문화재 번호 부여 문화재청 보존 의무 발생
등록 이후 신고의무, 구조변경 제한, 보조금 가능 문화재청, 지자체 활용 모델 필요
 

문화재는 과거를 박제하는 대상이 아니다.
특히 근현대 건축물은 지금 세대와 연결된 가장 현실적인 유산이다.
그 안에는 가족의 추억, 시대의 감정, 도시의 흐름이 녹아 있다.

그러나 등록문화재 제도는 아직 미완성이다.
지정의 문턱은 높고, 등록의 실효성은 낮다.
많은 근현대 건축물이 기록 없이 사라지고,
이미 등록된 건물들조차 활용되지 못한 채 방치되는 일이 빈번하다.

이제는 등록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등록 이후 어떻게 그 공간이 시민과 함께 살아 숨 쉬는 장소가 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 시민은 제안자이자, 사용자다.
  • 행정은 보호자이자, 설계자다.
  • 지역은 그 공간의 진짜 주인이다.

문화재 등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 시작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기억이 공간이 되고, 공간이 이야기가 되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