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현대 건축물과 그 시대의 도시 구조 변화
도시는 시간을 품고 있다. 고층 빌딩이 하늘을 찌르고, 지하철 노선이 그물처럼 뻗어나가는 오늘날의 도시 구조는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도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건축물 하나하나가 그 시대의 욕망, 기술, 정책, 이념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20세기 초부터 1970년대 산업화 시기까지 지어진 근현대 건축물은 단지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라, 당시 도시계획과 사회 변화, 국가적 체제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도시계획이라는 개념이 본격화되었고, 이 시기에 건축된 건물과 도시 인프라들은 이후 해방과 전쟁, 산업화를 거치며 도시 공간을 재편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었다.
나는 최근 몇 달간 서울, 인천, 대구, 군산을 오가며 근현대 건축물과 도시 구조의 흔적을 직접 탐방하고 기록하는 시간을 가졌다. 골목의 모서리에 남겨진 작은 관사, 전차가 다니던 넓은 도로, 서구식 학교 건물과 병원. 그것들은 각기 다른 표정을 지니고 있었지만, 한 가지 공통된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나는, 이 도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근현대 건축물을 단지 건물로 보지 않고, 그 건축물이 놓인 도시 맥락과 함께 살펴본다. 즉, 건축물과 도시 구조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변화해왔는지,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사회적 의미는 무엇이었는지를 시대별로 짚어볼 것이다.
1. 일제강점기 – 근대적 도시 구조와 건축의 시작
1-1. 식민 통치를 위한 도시계획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조선총독부는 한국의 주요 도시들을 ‘식민지적 질서’로 재편하기 위한 도시계획을 시작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경성부 도시계획이다.
- 방사형 도로망 구축
- 관공서와 금융기관 집중 배치
- 외국인 주거지(정동, 명동)와 조선인 거주지(청계천 이남)의 구획 분리
이는 단순한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계층과 민족에 따른 도시구조 분할이었다.
1-2. 공공건축물의 서구화와 상징성
이 시기 지어진 근대 건축물은 일본과 서구의 양식을 조합한 근대 고전주의 양식이 주를 이룬다.
- 경성역(현 서울역, 1925)
- 구 조선총독부(현 철거)
- 구 조선은행 본점(현 한국은행)
이 건축물들은 도시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식민 권력의 권위와 질서를 시각적으로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내가 찾은 구 인천일본제58은행 건물은 현재 인천시립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었는데, 대리석 기둥과 철제 창문 구조가 여전히 권위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2. 해방 이후 – 도시의 확장과 건축의 재배치
2-1. 해방 후 혼란기, 건축보다 주거가 우선되다
1945년 해방 직후부터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까지는 도시계획보다는 생존과 주거 해결이 우선이었다.
도시 인구는 급증했고, 기존 도심은 포화 상태가 되었다.
이에 따라 무허가 판잣집, 불법 건축물, 비위생적인 골목들이 급증했다.
도시는 불균형하게 확장되었고, 이 시기의 건축물들은 단순하고 비공식적이며,
기록 없이 건설된 경우가 많았다.
2-2. 초기 관사, 교회, 학교 – 사회 복원의 축
이 시기 일부 근현대 건축물은 국가 재건을 위한 사회기반 시설로 활용되었다.
예를 들어, 구미, 마산, 대구, 전주 등지에 남아 있는
- 구 관사
- 해방 후 건립된 신식 학교
- 미국 선교사들이 남긴 교회 건물
이들은 도시 내 커뮤니티의 중심 역할을 하며 도시 질서 재편의 시작점이 되었다.
대구 계산동의 구미국선교회 건물은 당시 도심 재건 과정에서 종교와 교육의 거점이 되었으며, 지금도 현존하고 있다.
3. 산업화 시대 – 기능 중심 도시계획과 건축의 표준화
3-1. 도시 고도성장과 마스터플랜 도입
1960년대 이후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도시계획 역시 대규모 마스터플랜 중심으로 재편된다.
- 택지개발지구
- 산업단지 조성
- 도심 재개발
서울 강남, 울산공업지구, 구로공단 등의 도시 인프라가 기능 중심으로 설계되었으며,
건축물 역시 표준화된 형태로 대량 건설되었다.
3-2. 모던 아파트와 오피스 빌딩의 등장
건축 측면에서는
-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모던 아파트
- 수직 성장의 고층 사무건물
이 등장하며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는 도시구조를 수평에서 수직으로 전환시키는 변화였고,
동시에 생활과 업무 공간이 구분되던 전통적 도시 구조에서
혼합형 도시공간으로의 전환이 본격화된다.
1970년대 세워진 서울 마포의 ‘현대아파트 1차’를 방문했을 때, 아파트 배치와 동선은 매우 기능적이었지만, 동시에 주변 소형 상점들과의 연결이 도시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4. 도시 구조 속 건축물 – 관계와 상호작용
4-1. 건축물이 도시구조를 만들다
근현대 건축물은 단지 도시 구조에 들어맞는 ‘조각’이 아니라,
도시의 구조를 형성하는 기준점이 되기도 했다.
- 서울역과 경성역 중심으로 한 도로망
- 군산 구 도심의 일자형 상가 구조
- 대구 계산성당과 주변 학교의 중심형 구획
이러한 건축물은 도시 구조 내 시민의 흐름, 상업, 종교, 교육의 중심축이 되었다.
4-2. 건축물의 잔존과 도시 기억의 연속성
도시가 개발되더라도 건축물이 남아 있는 곳은 과거 도시 구조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 종로의 피맛골은 거의 철거되었지만,
몇 채 남은 전통상가 건물이 도시의 동선을 기억하게 만든다.
이처럼 건축물은 도시계획보다 더 오래 살아남으며
도시 기억의 매개체로 기능한다.
한국의 시대별 도시구조와 건축물 변화 비교 요약
일제강점기 | 방사형 도로, 민족 구획 | 근대 고전주의, 일본식 관사 | 권력 중심의 공간 구성 | 식민 통치 상징 |
해방~전쟁기 | 불균형 확장, 판자촌 | 관사, 교회, 학교 | 사회복원 중심 | 도시 질서 재편 |
산업화기 | 기능 중심, 수직화 | 모던 아파트, 오피스 | 주거·산업 분리 및 재배치 | 도시 고도 성장의 상징 |
현대 | 재개발, 혼합구조 | 리모델링+보존 | 문화·주거 복합화 | 공간의 재해석 |
근현대 건축물은 단순한 과거의 잔재가 아니다. 그것은 도시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지도다.
도시는 도시계획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의 욕망, 통치 권력의 설계, 산업 구조의 필요, 그리고 생활 방식이
건축물을 통해 실체화되고,
그 건축물들이 모여 도시의 구조를 형성한다.
우리는 근현대 건축물 속에서,
- 식민 도시의 흔적
- 해방 이후 복원의 절박함
- 산업화 시기의 성장 이념
- 오늘날 재개발과 보존의 갈등
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따라서 앞으로의 도시계획과 공간 정책에서도
과거 건축물의 흔적을 단지 철거할 것인가 보존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도시 구조 안에서 새롭게 재배치할 수 있을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근현대 건축물은 도시의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도시구조의 DNA다.
그 DNA를 이해하고 존중할 때, 우리는 더욱 균형 잡힌 도시를 만들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