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건축물

근현대 건축물 골목 재생과 보존을 위한 시민 가이드

헤이 봄 2025. 8. 31. 13:10

도시를 거닐다 보면 한눈에 ‘시간의 결’이 느껴지는 골목길을 마주할 때가 있다. 아스팔트로 덮인 대로변에서 한 발짝만 들어서면, 오래된 적벽돌 건물과 나무문이 삐걱거리는 상점, 그리고 바람에 부서지는 얇은 간판이 남아 있는 길이 나타난다. 이곳은 단순한 ‘낡은 공간’이 아니다. 근현대 건축물은 한 도시의 경제, 정치, 생활사까지 오롯이 품고 있는 살아 있는 역사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골목은 재개발 바람에 흔적조차 사라지고 있으며, 보존보다는 철거가 우선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골목에 남아 있는 근현대 건축물은 거대한 문화재로 등록되지 못한 채 “그저 오래된 건물”로 취급받는다. 주민들은 생활 불편을 이유로 철거를 원하기도 하고, 개발업자는 효율적 토지 활용을 내세운다. 반면 시민과 학자들은 이 건축물이 도시의 정체성을 지탱하는 기둥임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골목을 지키고,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을까?

본 글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근현대 건축물 골목 재생과 보존의 가이드를 제시한다. 서울 종로·익선동, 군산 원도심,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등 실제 사례를 통해 체험적·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설명하면서, 지자체와 시민이 함께할 수 있는 실천적 방향을 모색해본다.

한국 근현대 건축물


1. 근현대 건축물 골목이 가진 의미

1-1. 생활의 역사서로서의 건축물

근현대 건축물은 대개 집, 상점, 학교, 은행 등 생활 공간이었다. 이는 단순한 미관을 넘어, 도시민의 삶과 감정을 담은 기록이다. 예를 들어 군산의 일본식 목조 가옥들은 피압박의 역사를, 종로의 익선동 한옥들은 해방 이후 시민들의 자생적 주거 문화를 보여준다.

1-2. 관광 자원으로서의 가치

서울의 익선동은 2010년대까지만 해도 철거 위기에 있었지만, ‘한옥 카페 거리’로 변모하면서 지금은 젊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건물 자체를 지키는 것이 곧 도시 브랜드와 경제적 가치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2. 골목 재생의 성공과 실패 사례

2-1. 성공 사례 – 익선동과 군산 원도심

익선동은 시민·건축가·상인들이 협력하여 한옥을 개보수해 카페·식당으로 활용하면서 골목 자체가 살아났다. 군산 원도심 또한 구 조선은행 본점, 구 군산세관 등을 중심으로 보존 작업을 진행해 전국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2-2. 실패 사례 – 재개발로 사라진 부산 초량동

부산 초량동의 일본식 가옥들은 상당수가 철거되어 아파트 단지로 변했다. 역사적 맥락은 사라졌고, 지역 정체성 또한 약화되었다. 이는 시민 참여와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했던 결과다.


3. 시민이 할 수 있는 보존 활동

3-1. 작은 기록의 힘

주민이나 시민은 건축물의 사진을 찍고, 간단한 구술 기록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보존 운동에 기여할 수 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한 시민 단체는 10년간 골목 건물 300여 채를 기록했고, 이 데이터는 훗날 학술 연구와 문화재 등록 심의 과정에서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3-2. 주민 참여형 해설사 활동

군산과 목포에서는 주민들이 직접 해설사가 되어 골목 이야기를 전한다. 이는 단순한 안내가 아니라, ‘우리 동네 건물’을 스스로 지킨다는 자부심을 높여준다.

3-3. 생활 친화적 재생 모델

건축물을 무조건 박물관처럼 고정시키는 대신, 카페, 게스트하우스, 공방 등으로 재활용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해야 주민에게는 경제적 혜택이 돌아가고, 건물도 자연스럽게 유지된다.


4. 골목 재생을 위한 제도적 장치

4-1. 등록문화재 제도의 확장

현재 등록문화재는 국가 단위에서 관리되지만, 골목 단위 건물들은 개별 등록이 어렵다. 따라서 지자체 차원에서 ‘골목군 등록문화재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4-2. 재생 지원금 제도

일본 교토의 경우, 전통 가옥을 개조하는 주민에게 보존·리모델링 비용의 50%를 지원한다. 우리나라 지자체도 비슷한 방식으로 지원금을 확대해야 한다.

4-3. 주민 협의체 운영

보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 의견 반영이다. 부산 초량동이 실패한 이유는 주민 갈등을 조정할 기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민, 전문가, 행정이 함께하는 ‘골목 보존 협의체’가 필요하다.


5. 체험 스토리: 직접 걸어본 골목에서

필자는 얼마 전 군산 원도심 골목을 걸으며 구 일본식 가옥과 벽돌 건물을 둘러보았다. 좁은 골목길에서 마주한 건물 벽에는 아직도 ‘주식회사 ○○ 상회’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옆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기서 제 아버지가 장사를 하셨고, 해방 이후엔 우리 가족이 이 집을 지켰어요. 손님들이 건물 사진을 찍으러 오면 뿌듯하면서도, 빨리 허물자는 동네 사람들과 마음이 엇갈려요.”

이 짧은 대화에서, 근현대 건축물 보존의 딜레마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생활 불편과 역사 보존 사이의 긴장은 오늘날 모든 골목이 직면한 현실이다.


6. 시민 가이드라인 정리

  1. 사진과 기록 남기기 –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2. 주민 중심 해설사·답사 프로그램 참여하기 – 작은 관심이 큰 힘이 된다.
  3. 생활형 재생 아이디어 제안하기 – 카페·문화 공간 등 현실적인 활용책 필요.
  4. 지자체 보존 정책 의견 제출하기 – 주민 공청회, 설문, 민원 등을 적극 활용.
  5. 청년 참여 확대하기 – 대학생 답사단, 청소년 기록 캠프 등 후속 세대를 연결.
구분 주요 내용 시사점
골목 의미 생활사·역사·정체성 기록 단순 건물이 아닌 도시 기억
성공 사례 익선동(카페 거리), 군산 원도심(관광 명소) 시민·상인 참여가 성패 좌우
실패 사례 부산 초량동 철거 제도·주민 협의 부족
시민 역할 기록, 해설, 생활 친화형 재생 작은 참여가 큰 변화
제도 개선 골목군 등록문화재, 지원금, 협의체 제도적 뒷받침 필수
향후 과제 생활과 보존의 균형 주민 생활권과 역사 보존 조화

 


7. 지역별 골목 재생 사례 심화

7-1. 서울 익선동 – ‘한옥 카페 거리’로의 변신

익선동 골목은 원래 1920년대에 조성된 한옥 주거지였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철거 논의가 꾸준히 이어졌으나, 젊은 건축가들이 주거 공간을 카페, 갤러리, 식당으로 변모시키면서 지금의 ‘익선동 카페 거리’가 탄생했다.

익선동 주민 김 모 씨(60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도 오래돼서 불편했지만, 개보수하면서 임대료를 받고, 건물은 지킬 수 있었어요. 이젠 사람들이 사진 찍으러 오고, 외국인들도 찾아와요. 골목이 살아났다는 걸 피부로 느껴요.”

이처럼 생활 불편 → 보존형 개보수 → 경제적 이익 → 지역 활성화라는 선순환 구조가 가능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7-2. 군산 원도심 – 근대 건축물 박물관 같은 거리

군산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상권 중심지였다. 이 시기의 은행 건물, 상점, 목조 가옥이 아직도 남아 있으며, 현재는 ‘군산 근대역사문화거리’로 불린다. 관광객들은 좁은 골목을 걸으며 당시 상점 간판과 벽돌 건물들을 체험할 수 있다.

군산에서 만난 한 해설사는 이렇게 전했다.

“건물을 그냥 두면 무너지고, 관리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요. 하지만 관광객이 오니까 건물주들도 유지할 의지가 생기죠. 결국 보존은 경제와 맞물릴 때 힘을 얻습니다.”

즉, 보존의 지속성은 문화적 의미와 경제적 실리의 균형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7-3.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 주민이 주체가 된 보존

목포는 2017년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된 이후,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보존 운동이 활발하다. 특히 ‘목포 시민 아카이브 프로젝트’는 주민들이 옛 사진과 구술 기록을 모아 온라인에 공개하는 작업이다.

한 주민 인터뷰:

“우리 집은 그저 낡은 창고라고 생각했는데, 조사해 보니 1930년대 일본인 상인이 운영하던 양곡 창고였더라고요. 이제는 자부심을 가지고 건물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주민이 주체가 되는 참여’가 곧 건물 보존의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8.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 제안

8-1. 골목 답사 지도 제작

시민과 청년들이 함께 골목 건물 사진을 찍고, 스토리와 위치를 담은 디지털 지도를 제작할 수 있다. 이는 관광객에게는 유용한 안내서가 되고, 학자와 행정에는 중요한 기록물이 된다.

8-2. 청소년 역사 건축 캠프

중·고등학생들이 직접 골목 건축물을 조사하고, 모형 제작·스토리 발표까지 이어지는 체험 프로그램을 제안할 수 있다. 이는 미래 세대의 보존 의식을 심어주는 중요한 교육적 효과를 가진다.

8-3. ‘골목 재생 서포터즈’ 운영

지자체는 시민 봉사단을 모집하여, 정기적으로 건물 청소, 안내, 기록 작업을 지원하게 할 수 있다. 이는 주민과 방문객 사이의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한다.


9. 해외 사례와의 비교

9-1. 일본 교토 마치야 보존

교토는 전통 목조 가옥 ‘마치야’를 지키기 위해 보존 리모델링 비용 지원 제도를 운영한다. 이 과정에서 주민이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주거·상업 병행을 장려했다.

9-2. 프랑스 파리의 골목 관리

파리는 역사적 골목을 도시계획 단계에서 ‘보존 구역’으로 지정한다. 철거나 재개발이 거의 불가능하고, 건물 외형을 크게 훼손할 수도 없다. 대신 건물 내부는 현대적으로 개조해 생활 편의를 제공한다.

이러한 해외 사례는 한국 골목 보존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단순히 ‘보존하라’는 구호가 아니라, 생활과 경제, 문화가 함께 살아 있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10. 미래 세대를 위한 골목의 가치

골목에 남은 근현대 건축물은 단지 ‘오래된 흔적’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의 집단 기억이며, 후손이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열린 교과서다. 만약 이 골목들이 모두 사라진다면, 후세는 과거를 오직 책 속 사진으로만 배워야 한다.

시민 한 사람의 작은 실천이 모여, 한 도시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 골목에서 찍은 사진 한 장, SNS에 기록한 글 한 줄이 미래에는 역사 자료가 된다. 결국 보존의 주체는 전문가가 아니라, 지금 이 골목을 걷는 우리 모두다.


근현대 건축물 골목은 도시의 숨결이 켜켜이 쌓인 공간이다. 그러나 현재의 흐름대로라면 많은 골목이 철거와 재개발의 속도에 밀려, 머지않아 지도에서 사라질 위험에 놓여 있다. 이제는 전문가와 행정만이 아닌 시민의 손길이 필요하다. 사진 한 장을 남기고, 건물 이야기를 구술하며, 카페나 작은 가게로 재생하는 실천이 바로 골목을 지키는 힘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골목은 나와 무관한 과거가 아니라, 내가 속한 도시의 미래’라는 인식이다. 시민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때, 근현대 건축물 골목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 다음 세대에게 이어질 수 있다. 골목은 사라지는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다시 써 내려가야 할 이야기의 무대다.

 

골목 보존은 행정이나 학자만의 과제가 아니다. 주민의 생활, 상인의 생계, 시민의 참여가 어우러질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힘을 얻는다. 특히 기록–체험–재생–참여라는 네 가지 축을 중심으로 시민이 움직인다면, 근현대 건축물 골목은 더 이상 ‘사라질 유산’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현재의 문화’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