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건축물

근현대 건축물 보존 현황과 미래 활용 방안

헤이 봄 2025. 9. 3. 01:00

도시는 시간이 흐르면서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그 속에서도 꿋꿋이 남아 있는 건축물은 세월의 증인이자 역사의 산증인이다. 근현대 건축물은 바로 그러한 존재다. 그것은 단순한 벽돌과 시멘트의 조합이 아니라, 식민지 시기를 거쳐 해방과 산업화를 지나온 민족의 기억이 고스란히 새겨진 문화적 유산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개발의 압력은 여전히 거세고, 보존 예산은 부족하며, 시민들의 관심도 늘 일정하지 않다. 어떤 건축물은 복원과 재생을 통해 새 삶을 얻지만, 또 다른 건축물은 철거와 함께 영원히 기록 속으로만 남는다.

나는 작년 여름, 서울 을지로 골목을 직접 걸으며 오래된 인쇄소 건물들을 바라본 적이 있다. 네온사인 가게와 철물점이 줄지어 있던 그 거리는 겉보기에는 낡고 허름했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당시 건축 양식의 독특한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콘크리트와 벽돌을 절묘하게 섞어 지은 외벽, 시대의 경제성을 고려한 좁은 창문, 그리고 곳곳에 남아 있는 간판과 장식들이 도시의 시간성을 증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골목 역시 재개발 계획 속에서 사라질 운명을 맞이하고 있다.

이 글은 그러한 현실을 마주하며, 근현대 건축물의 보존 현황을 살펴보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이 유산을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안을 탐구하고자 한다. 단순히 건물을 지켜야 한다는 선언적 차원을 넘어, 실제 정책·현장 체험·시민 활동과 연결되는 실질적인 논의를 펼쳐 나갈 것이다.

한국의 근현대 건축물


1. 근현대 건축물 보존 현황

1-1. 전국의 등록 현황과 문화재 제도

현재 문화재청에 등록된 근현대 건축물은 약 1,000여 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서울과 부산, 대구 등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으며, 지방 중소 도시의 경우 등록조차 이루어지지 못한 채 방치된 건물이 많다. 등록 문화재 제도는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건축물에 보존 가치를 부여하지만, 모든 건축물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진다. 예컨대 1930년대 지어진 충북 제천의 옛 양옥집은 학술적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등록 절차가 지연되어 결국 철거된 사례가 있다.

 

1-2. 보존의 현실적 어려움

보존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은 재정 문제다. 개인이 소유한 건축물의 경우 유지 관리 비용이 상당히 크며, 국고 지원은 일부에 한정된다. 또한, 개발 압력은 늘 보존 논리보다 우위에 서는 경우가 많다. 서울 청진동의 한 근대식 상가 건물은 임대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는 고층 오피스 빌딩이 들어섰다.

 

1-3. 현장에서의 체험 사례

나는 최근 대구 근대골목투어에 참여했을 때, 오래된 은행 건물 내부를 직접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은행 금고의 두꺼운 철문, 손때 묻은 대리석 계단, 그리고 1930년대 조선과 일본 건축 양식이 혼합된 외관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안내인은 이 건물이 언제 철거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덧붙였다. 그 말을 들으며, ‘보존 현황’이라는 말이 단순히 수치나 목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긴박한 생존의 문제임을 체감했다.


2. 근현대 건축물 보존의 사회적 가치

2-1. 역사적 기억의 저장소

근현대 건축물은 과거를 현재로 불러오는 통로다. 경성역(현 서울역) 구 본관 건물에 들어서면, 해방 직후 귀환 열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건축물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를 품은 ‘기억의 상자’다.

 

2-2. 도시 정체성과 브랜드 가치

근현대 건축물은 단지 보존해야 할 유물이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자산이다. 부산의 영도다리, 인천 차이나타운의 근대 건축물들은 관광 자원으로 적극 활용되며 지역 경제를 살리고 있다. 건축물을 지키는 일은 곧 도시의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

 

2-3. 시민 삶의 공간으로서의 의미

서울 성수동의 오래된 공장을 리모델링한 복합 문화공간은 젊은 세대가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과거 산업 시설이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되며, 시민들의 생활 속으로 스며든 것이다. 근현대 건축물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현재의 삶과 맞닿을 때 그 가치를 배가한다.


3. 미래 활용 방안

3-1. 보존에서 활용으로: 패러다임 전환

이제는 단순한 보존을 넘어 ‘활용을 통한 보존’의 관점이 필요하다. 건축물을 그대로 박제화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 공간·전시관·체험관 등으로 변모시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찾게 해야 한다.

 

3-2. 디지털 아카이빙과 VR 복원

물리적 보존이 어려운 경우, 디지털 아카이빙과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예컨대 철거된 건축물의 3D 스캔 데이터를 기록해두면, 후대 연구와 교육에 활용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디지털 헤리티지 프로젝트’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3-3. 지역사회와 시민 참여 확대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의 관심이다. 지역 답사 프로그램, 시민 기록단 운영, 건축물 기반 축제 개최 등을 통해 주민들이 직접 보존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로 전주에서는 옛 건축물을 활용한 주민 참여형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두며 도시 전체의 문화적 매력이 높아졌다.


4. 해외 사례와 시사점

4-1. 일본 교토의 근대 건축물 보존

교토는 전통 건축뿐 아니라 근대 건축물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있다. 카페나 갤러리로 재탄생한 목조 건물들이 관광객을 끌어들이며, ‘살아 있는 유산’으로 기능한다.

 

4-2. 유럽 도시의 사례

독일 베를린은 냉전 시대 건축물을 보존하며 현대적인 해석을 더해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는 한국이 군사 정권이나 산업화 시기의 건축물을 바라보는 태도와 대조적이다. 우리는 불편한 기억조차 역사로 포용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5. 지역별 보존 현황의 차이와 과제

5-1. 수도권: 개발 압력 속에서 남은 건축물들

서울은 근현대 건축물 보존의 최대 격전지라 할 수 있다. 서울역 본관, 옛 서울시청 건물은 보존과 활용의 대표 성공 사례로 꼽힌다. 반면 을지로·청계천 일대의 중소규모 건물들은 재개발 바람 속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서울시 관계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도시 재생 정책이 확대되면서 일부 건축물은 보존이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경제 논리가 우선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수도권에서는 대형 공공 프로젝트와의 연계 여부가 건축물 보존 성패를 좌우하는 현실이 두드러진다.

 

5-2. 영남 지역: 근대화의 흔적과 관광 자원화

대구와 부산은 근대 도시화 과정에서 세워진 건축물들이 많다. 대구의 계산동 성당, 경상감영 건물, 옛 은행 건물들은 ‘근대 골목 투어’라는 관광 프로그램과 연결되며 보존에 성공했다. 부산 역시 영도다리, 구 일본영사관 등 건물들이 도시 정체성을 강화하는 핵심 자원으로 기능한다. 하지만 반대로, 소규모 여관·상점·주택 건물들은 제도적 지원 부족으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5-3. 호남과 충청: 등록의 사각지대

전라도와 충청도의 중소 도시에는 아직 이름조차 등록되지 못한 건축물이 다수 존재한다. 전북 군산은 예외적으로 ‘시간여행 도시’라는 이름 아래 근대 건축물들을 적극 활용하고 있지만, 전남의 작은 도시들에서는 구 일본식 목조건물이나 옛 읍사무소 건물들이 무관심 속에 방치되곤 한다. 충청권에서도 마찬가지로 소규모 건물의 관리 체계가 미흡하다.


6. 전문가와 활동가의 목소리

나는 지난 3월, 서울 종로에서 열린 “근현대 건축물 보존과 활용” 포럼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건축가 한 분이 강조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 “근현대 건축물은 그 시대의 생활과 가치관이 응축된 공간이다. 지금 철거한다는 건 그 기억을 송두리째 잘라내는 일이다.”

또 다른 활동가는 지역 주민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보존은 결국 주민이 주인공이어야 한다. 행정이 계획만 세우고 주민이 외부인처럼 참여하지 못한다면, 건물은 살아남아도 ‘죽은 유산’이 된다.”

이들의 발언은 단순한 건축 보존이 아니라, 사람과 건물의 관계를 되살리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7. 시민 체험과 참여 확대 전략

7-1. 시민 기록단 운영

부산에서는 ‘근대건축 시민기록단’을 운영해, 주민이 직접 건축물 사진을 찍고 구술 기록을 남기도록 했다. 이를 통해 단순히 건축물 보존을 넘어서 지역 공동체의 기억을 함께 기록하는 성과를 얻었다.

 

7-2. 체험형 답사 프로그램

군산의 ‘시간여행 마을’ 프로그램은 시민과 관광객이 당시 의상을 입고 근대 건축물 거리를 걸어보는 체험형 답사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는 보존된 건축물을 단순히 보는 차원을 넘어 체험을 통해 역사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효과를 낳았다.

 

7-3. 교육 연계형 프로그램

서울에서는 일부 학교와 연계해 건축물 답사를 수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이 현장에서 건축 양식을 직접 관찰하고, 일제강점기부터 산업화까지의 맥락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이런 경험은 교과서의 한 줄이 아닌 살아 있는 역사 교육으로 작동한다.

 

구분  내용 요약 사례
보존 현황 등록 문화재 약 1,000건, 대도시 집중, 지방은 방치 많음 제천 옛 양옥집 철거 사례
어려움 재정 부족, 개발 압력, 시민 관심 부족 청진동 근대식 상가 철거
가치 역사적 기억·도시 정체성·시민 공간 서울 성수동 공장 재생
활용 방안 활용 중심 보존, 디지털 아카이빙, 시민 참여 확대 전주 주민 참여 프로젝트
해외 사례 일본 교토, 독일 베를린 목조 건물 재생, 냉전 건축 활용
핵심 결론 단순 보존 → 활용 보존, 시민 참여와 디지털 기술이 미래 해법  

근현대 건축물은 사라지는 유물이 아니라, 지금 우리와 함께 숨 쉬는 문화적 자산이다. 그러나 그 보존 현황은 여전히 불안정하며, 무관심 속에서 많은 건축물이 사라지고 있다. 이제는 단순한 ‘보존의 논리’를 넘어서 ‘활용의 실천’으로 나아가야 한다. 시민이 찾고 즐기는 건축물이 될 때, 그것은 진정으로 살아남는다.

근현대 건축물 보존은 단순히 과거를 지키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풍요롭게 하고, 미래 세대에게 문화적 기반을 물려주는 일이다. 우리가 오늘 내리는 선택이, 50년 뒤 우리의 후손이 마주할 도시의 얼굴을 결정짓는다.

 

앞서 다룬 내용에 지역별 현황과 전문가 발언, 시민 참여 방식까지 더해 보면, 근현대 건축물 보존은 더 이상 소수 전문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지역 주민, 행정, 학계,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 반드시 다층적으로 접근해야 할 과제다. 우리가 보존의 범위를 넓히고, 활용의 방식을 다양화하며, 참여의 문턱을 낮출 때 비로소 근현대 건축물은 살아남아 미래 세대에게 진정한 자산으로 전달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