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건축물

직접 방문한 서울의 근현대 건축물 5곳의 보존 상태 리포트

헤이 봄 2025. 8. 3. 06:00

한국의 근현대 건축물

우리 주변에는 눈에 띄지 않게 남겨진, 그러나 시대의 기억을 고스란히 품은 건축물들이 있다. 바로 ‘근현대 건축물’이다. 이 건물들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 시기라는 사회적 격동 속에서 사람들의 삶과 시간을 견디며 오늘에 이르렀다. 하지만 정작 이들 중 상당수는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채, 방치되거나 철거될 위기에 놓여 있다.

어느 날 나는 궁금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지고 있는 근현대 건축물들을 직접 보고, 그 상태를 기록하면 어떨까?” 단순한 궁금증에서 시작한 탐방은 하나의 집요한 기록으로 이어졌고, 직접 다녀온 다섯 곳의 건축물은 각기 다른 시간과 사연을 품고 있었다.

이 글은 서울과 수도권, 지방 도시를 포함한 5곳의 근현대 건축물을 직접 방문한 뒤, 그 보존 상태, 공간의 특성,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리포트다. 보존은 단순히 남겨두는 것이 아니다.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1. 서울 종로구 ‘청운의원’ – 시간이 멈춘 근대 한의원

붉은 벽돌의 아름다움, 그러나 비어 있는 공간

서울 경복궁 근처 청운동에 위치한 ‘청운의원’은 1930년대 후반에 지어진 붉은 벽돌 건물이다. 외벽은 정돈된 벽돌쌓기 방식이 인상적이고, 목재 이중창과 녹슨 철제 간판이 여전히 남아 있다. 내부는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지만, 현관을 통해 본 내부 구조는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돼 있었다.

주민들의 기억과 현실의 간극

근처 카페 사장님께 이 건물에 대해 묻자, “예전에는 동네에서 꽤 유명한 한의원이었어요. 할아버지가 침 맞으러 자주 오셨다고 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는 소유주가 부재 중이고, 건물은 비워진 채 방치되어 있다. 문화재 등록은 시도되지 않았고, 관리 주체가 모호한 상태다.

보존 상태: 외형 양호, 내부 미확인, 관리 부재
현황 요약: 철거는 아니지만, 실질적 보존도 없는 상태


2. 인천 동구 ‘화수동 일본식 가옥’ – 일제강점기의 흔적

목조 구조에 깃든 이질적 아름다움

인천 화수동의 해안가 골목을 걷다 보면, 유난히 낮은 처마와 회색 기와로 이루어진 일본식 목조 가옥이 눈에 들어온다. 이 집은 1920년대 일본 상인이 거주하던 주택으로, 전통 한옥과는 다른 구조적 감각이 돋보였다. 내부는 출입이 가능했고, 미닫이문과 다다미방, 작은 정원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민간 보존의 한계

현재 이 건물은 지역 주민이 자비로 관리 중이다. “이 집을 헐면 골목 분위기 자체가 달라져요. 그냥 살려두고 싶어서 정리만 하고 있어요.” 주민의 말처럼, 보존은 제도 이전에 ‘의지’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보존 상태: 외형 및 내부 양호, 자발적 관리
현황 요약: 행정 지원 없음, 개인 보존 노력에 의존


3. 충북 청주 ‘○○간이역’ – 조용히 사라지는 철도 유산

폐역이 된 역사의 현장

청주 외곽, 국도 옆 언덕 위에 작은 간이역 하나가 남아 있었다. 이름조차 희미해진 이 간이역은 1960년대 후반에 개통되었다가 1990년대 초반 폐쇄됐다. 현재는 철도 선로도 제거된 상태지만, 역사의 형태와 매표소 구조는 그대로 남아 있다. 작은 대합실, 창틀 없는 창문, 낡은 벤치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다.

누가 기억해야 하는가?

이 역은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다. 코레일도 관할을 벗어났고, 지방자치단체도 관심이 없다. 다만, 마을 어르신들이 “옛날에는 여기서 서울도 갔지”라고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마치 공동체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건축물’이 된 것이다.

보존 상태: 외형 보존, 내부 붕괴 진행 중, 행정 관심 無
현황 요약: 철거 예정은 없으나 실질적 방치 상태


4. 전남 목포 ‘근대 양옥 주택’ – 식민지 시대의 건축 양식

‘누가 살았을까’를 상상하게 만드는 집

목포 원도심의 높은 언덕 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2층짜리 양옥집이 하나 있었다. 입구 계단은 부서져 있었고, 2층 발코니는 무너질 듯 위태로웠다. 하지만 창틀, 벽돌, 출입문 등은 원형이 대부분 유지되어 있었다. 지역 주민에 따르면, 이곳은 1930년대 일본 관리가 살던 집으로, 해방 후에도 몇 차례 주인이 바뀌며 사용됐다고 한다.

보존의 딜레마

목포시는 이 일대를 ‘근대 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하려 했으나 예산과 소유권 문제로 대부분이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주민들도 “문화재 지정은 좋은데, 사는 사람 생각도 좀 해줘야지.”라며 복잡한 심정을 토로했다.

보존 상태: 외형 노후, 내부 붕괴 위험, 행정 절차 정체
현황 요약: 보존 가치 인정은 있으나 실질적 진행 없음


5. 경기 수원 ‘○○사진관’ – 도시화에 갇힌 마지막 공간

흑백 사진으로 남은 기억

수원 구도심 한복판, 재개발 구역 한가운데 작은 1층짜리 건물이 외롭게 서 있다. 간판에는 ‘○○사진관’이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내부에는 오래된 현상기와 필름 통이 먼지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실제로 운영되던 사진관이었다.

예고된 철거, 기록은 누가 남길까

이 사진관은 현재 철거 대상이다. 필자는 주인에게 허락을 받아 마지막으로 내부를 촬영하고, 짧은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 기계들, 지금도 돌아가긴 해요. 근데 사진 찍을 사람도 없고, 남길 의미도 없잖아요.” 주인의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보존 상태: 외형 비교적 양호, 철거 예정
현황 요약: 보존 논의 없음, 단순 정비 후 철거 대기


근현대 건축물 보존 상태 요약

1 서울 청운동 한의원 건물 외형 양호, 내부 미확인 방치 상태 소유자 부재
2 인천 화수동 일본식 가옥 외형·내부 양호 주민 자발적 관리 지원 없음
3 청주 외곽 간이역 외형 유지, 내부 붕괴 진행 실질적 방치 코레일 관할 아님
4 목포 원도심 양옥 주택 외형 노후, 보존 가치 높음 행정절차 지연 문화재 후보지
5 수원 구도심 사진관 외형 유지, 내부 원형 보존 철거 예정 기록 필요성 高
 

직접 방문한 다섯 곳의 근현대 건축물은 하나같이 시간이 멈춘 공간들이었다. 그 안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분명한 삶의 흔적과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보존의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었다. 관리 주체가 없거나, 관심은 있지만 예산과 제도적 장치가 부족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건물은 방치되거나 곧 철거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공간들을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기억은 곧 보존의 첫 단추가 된다. 우리가 지금 하지 않으면, 이 건물들은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질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예산이 아니다. 관심, 기록, 그리고 작지만 지속적인 참여다.

이 기록이 그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건물들 중 하나라도, 다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 있는 역사’로 기억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