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건축물은 말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오래된 벽돌과 기와, 녹슨 철문과 휘어진 마룻바닥 위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것은 말보다 더 강한, 시간의 층위가 쌓여 만들어낸 무언의 기록이다.
한국의 근현대 건축물은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해방과 전쟁, 산업화를 지나오며 각 시대의 아픔과 희망, 변화의 물결을 담아왔다. 이 건축물들은 단지 구조적 기능을 넘어서,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정서, 정치적·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매개체로 존재했다.
나는 지난 1년간 전국을 돌며 근현대 건축물을 직접 답사하고, 그 속에 남겨진 흔적을 기록해왔다.
서울 종로의 근대 상가, 인천 배다리의 책방 골목, 대전의 철도관사, 군산의 일본식 적산가옥, 대구의 선교사 주택 등.
처음에는 단순한 외형만을 바라보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창문의 방향, 벽의 균열, 나무 계단의 손때에서 그 시절의 흔적이 나를 향해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 글은 건축 전문서가 아니며, 단순한 여행기도 아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건축물을 매개로 시간과 마주했던 체험을 서술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를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한다.
지금은 사라져가는 것들 속에서, 아직도 살아 숨 쉬는 그 시절의 흔적을 따라가 보자.
1. 종로구 익선동 – 한옥 지붕 아래에 남은 가족의 기억
전통과 근대가 충돌한 서울의 중심
익선동은 일제강점기 말기, 도시 주거의 표준화를 위해 형성된 도시형 한옥 밀집 지역이다.
좁은 골목 안에 규격화된 한옥이 줄지어 있으며,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형 한옥 마을 중 하나다.
내가 익선동의 한옥 중 한 채를 찾았을 때, 그것은 이미 카페로 리모델링된 공간이었다.
하지만 마루의 높이, 부엌이 아닌 방에서 보였던 작은 아궁이, 천장에 남아 있던 굴뚝 흔적은
단지 가족의 삶터였던 시간의 조각을 품고 있었다.
“이 집은 할머니가 혼자 살던 집이었어요. 여름이면 뒷마당에 수박을 놓고 드시던 기억이 나요.”
– 카페 운영자, 김 모씨
그 건물은 더 이상 주택이 아니었지만, 건축물에 각인된 삶의 흔적은 문화 공간 안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
2. 인천 동구 배다리 – 책방 골목에 남은 저항의 기운
철도, 출판, 저항 그리고 기억의 도시
인천 배다리는 1920~30년대 중구와 동구를 연결하는 문화·출판 중심지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비밀 독립신문과 출판물이 이곳에서 인쇄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진보적 시민운동의 거점이었다.
그 중심에 위치한 '차이나타운 인쇄골목',
나는 그곳에서 1940년대 목재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한 인쇄소 건물을 방문했다.
창틀 사이로 비스듬히 들어오는 햇살, 손으로 돌리는 활판 인쇄기, 나무 가득한 책장 사이에서
나는 '표현의 자유'가 건물 안에 살아 있음을 느꼈다.
“책은 이 건물에서 나온 게 아니라, 이 건물이 바로 책이었어요.”
– 현지 출판활동가
도시 재개발로 대부분 철거되었지만, 몇 채 남은 건축물은 여전히
자유와 저항, 글과 기억의 흔적을 품고 있었다.
3. 군산 신흥동 – 일본식 적산가옥에 남겨진 식민의 그림자
모순된 아름다움과 시대의 아이러니
군산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쌀 수탈과 일본 이민정책의 중심지로 개발된 도시다.
신흥동 일대에는 지금도 일본식 목조건물, 상가, 주택, 사찰이 남아 있다.
그중 하나는 현재 ‘히로쓰 가옥’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문화재가 된 적산가옥이다.
나는 그 가옥을 찾았을 때, 잘 관리된 정원과 단아한 목조 건축에 놀랐다.
하지만 동시에 그 내부에는 조선인 하녀가 쓰던 방, 분리된 식사공간, 뒤편의 감시창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집이 예쁘다고만 말하면 안 돼요. 이 안에는 ‘누가 살았는가’가 중요하죠.”
– 군산 근대문화해설사
건축물은 미적 대상이기도 하지만, 당시 권력과 억압 구조를 시각화한 매개체이기도 하다.
그 사실을 잊는 순간, 우리는 역사를 미화하게 된다.
4. 대전 철도관사촌 – 노동자의 삶이 남은 주거의 단면
균형 잡힌 구조, 삶의 흔적, 사라진 공동체
대전은 철도의 도시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산업화를 거치며 수도권과 남부를 잇는 핵심 도시였고,
그 중심에는 대규모 철도 관사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내가 찾은 곳은 대전 중구 오류동,
현재는 일부만 보존되어 있지만, 그 중 한 채는 시민단체가 관리하는 역사전시관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집 안에는 1960년대 잡지, 당시 사용된 철제 전화기, 나무 온돌침대, 벽시계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여기 살던 분들은 모두 철도청 직원이었어요. 삶이 곧 국가의 일부였던 거죠.”
이런 건축물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노동의 가치, 공공성, 공동체 정신이 새겨진 생활의 구조였다.
5. 근현대 건축물의 흔적이 주는 의미
눈에 보이지 않는 기록, 몸으로 느껴야 알 수 있는 역사
건축물에는 벽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자고, 먹고, 일하고, 싸우고, 웃던 사람의 흔적이 각인된 공간이다.
근현대 건축물은 특히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삶의 구조와 방식을 담고 있기에,
기록보다 더 현실적인 역사의 증언자가 된다.
기억을 유지하기 위한 보존의 역할
이런 건축물들이 사라지면, 우리는 단지 건물 하나를 잃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삶의 방식, 정서, 감정, 시대의 분위기를 함께 잃는다.
따라서 보존은 단지 외형 유지가 아니라,
그 건축물 속 ‘그 시절의 흔적’을 이해하고 재해석하는 노력이어야 한다.
한국 근현대 건축물의 시대별 흔적 요약
서울 익선동 | 도시형 한옥 | 1930년대 | 아궁이, 마루, 뒷마당 | 가족의 일상과 공동체 주거 |
인천 배다리 | 인쇄소 건물 | 1920~40년대 | 활판 인쇄기, 목재 책장 | 출판·저항 문화의 상징 |
군산 신흥동 | 적산가옥 | 일제강점기 | 하녀방, 감시창 | 식민 권력 구조의 시각화 |
대전 오류동 | 철도 관사 | 1950~60년대 | 온돌, 철제 전화기 | 공공노동자의 삶과 주거 방식 |
건축물은 시간이 남긴 가장 묵직한 흔적이다.
특히 근현대 건축물은 한국 사회가 겪은
- 식민 지배
- 해방과 전쟁
- 산업화
- 민주화
과정을 모두 껴안은 살아 있는 유산이다.
이들 건물의 구조, 소재, 배치, 내부 동선 하나하나에는
당시 사람들의 선택과 감정, 시대의 압력이 스며 있다.
우리는 종종 ‘건축은 과거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건축물들은 여전히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 속에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 모두가
그 시절의 흔적 위에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인 셈이다.
그 흔적은 마모되고 지워질 수도 있지만,
우리가 다시 바라보고, 느끼고, 기록한다면
그 기억은 계속 이어질 수 있다.
이제는 개발과 철거의 속도보다
기억을 남기고 재해석하는 속도에 집중할 때다.
건축물을 다시 본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누구였고 어디에서 왔는지를 되묻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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