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건축물

직접 찾아간 서울 근현대 건축물 7선

헤이 봄 2025. 8. 17. 03:00

서울은 화려한 고층 빌딩과 전통 한옥이 공존하는 도시지만, 그 사이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또 다른 시간이 숨어 있다.
나는 이번에 일부러 현대식 재개발 구역을 비켜가, 20세기 초부터 중반에 지어진 근현대 건축물을 찾아 나섰다.
지도에 표시된 건물은 대부분 ‘보존 대상’이나 ‘등록문화재’라는 명칭을 달고 있었지만, 직접 가보니 책 속 정보만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숨결이 느껴졌다.

현장에서 마주한 건물들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었다.
그들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시대의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낸 증인이었다.
벽돌의 색 변화, 창문의 비율, 입구의 장식과 간판 하나하나가
그 시절 서울 사람들의 일상과 사회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근현대 건축물을 답사하는 일은,
박물관에서 유물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르다.
그 공간은 여전히 거리를 향해 열려 있고,
바람과 햇빛, 그리고 현대의 소음 속에서 과거를 속삭인다.

이번 여정은 ‘서울의 근현대 건축물 7선’을 직접 걸어보고, 보고, 기록한 결과물이다.
각 건물은 서로 다른 시기와 용도를 가졌지만,
하나같이 서울의 역사와 도시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였다.
이제 그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한국의 근현대 건축물

 

서울의 근현대 건축물들은 단순한 ‘오래된 건물’이 아니다.
그들은 전쟁과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의 길목을 묵묵히 지켜본 목격자이자, 수많은 세대가 만들어온 도시의 표정이다.
종로의 골목 안에 숨어 있는 작은 벽돌 건물, 한강변을 굽어보던 옛 공장, 대학 캠퍼스 한쪽의 근대식 강당 등은 서울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교과서다.

직접 찾아가 마주한 그 건물들은 사진으로만 보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울림을 주었다.
햇빛이 드리운 창문 틈, 손때 묻은 난간, 시간이 빚어낸 균열은 책 속의 역사보다 더 설득력 있는 증언이었다.
이 여정은 단순한 건축 답사가 아니라, 서울이라는 도시의 시간 여행이자, 우리가 잊고 있던 이야기와 다시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1. 경성방직 사옥 – 산업화의 출발점

1-1. 첫인상과 공간감

마포구의 한 골목 끝에서 마주한 경성방직 사옥은,
단정한 붉은 벽돌과 대칭형 창문이 인상적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오래된 기계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공기감이 느껴졌다.

1-2. 역사와 의미

1930년대 지어진 이 건물은,
한국 섬유 산업의 중심이었던 경성방직의 본사였다.
산업화 초기의 공간 구조와 재료 사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2. 옛 서울역사 – 모더니즘과 제국의 흔적

2-1. 체험의 순간

광장에서 바라본 옛 서울역사는,
현재는 문화역서울 284라는 전시장으로 쓰이고 있다.
내부에 들어서니 높은 돔 천장과 대리석 계단이 압도했다.

2-2. 건축적 특징

1925년 완공된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로,
당시 철도 교통의 위상과 일본 제국의 도시 계획 의도를 동시에 담고 있다.


3. 배재학당 동관 – 근대 교육의 현장

3-1. 현장 분위기

중구 서소문로의 배재학당 동관은
청색 벽돌과 간결한 목조 창문틀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교실 안에 들어가니, 나무 바닥이 발걸음을 따라 울렸다.

3-2. 역사적 맥락

1890년대 말 미국 감리교 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이곳은,
근대식 교육의 상징이자,
서구 건축 양식이 서울에 뿌리내린 초기 사례다.


4. 옛 조선은행 본관 – 금융의 권위

4-1. 시각적 압도감

명동 한복판, 회색 화강암으로 지어진 옛 조선은행 본관은
단순히 크기만으로도 위압감을 주었다.
둥근 기둥과 장식이 금융기관의 권위를 표현하고 있었다.

4-2. 건물의 이야기

1912년 완공된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금융 정책의 핵심 거점이었다.
현재는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으로 사용되며,
그 시대의 경제사와 건축미를 동시에 보여준다.


5.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 – 여성 교육의 상징

5-1. 건물과 주변 풍경

이화동 언덕 위에 자리 잡은 기념관은,
붉은 벽돌과 하얀 창틀이 교정의 푸른 나무와 어울렸다.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복도를 걸을 때,
마치 오래된 영화 속 장면에 들어간 듯했다.

5-2. 건축과 사회사

이 건물은 여성 교육 확대와 근대화의 과정을 상징하며,
서울의 교육문화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6. 덕수궁 석조전 – 서양식 왕궁의 실험

6-1. 공간 체험

석조전 앞마당에 서면,
정면의 네오클래식 양식 건물이 서울 한복판임에도 이국적으로 느껴진다.
내부의 대리석 계단과 샹들리에는 왕실의 서양 문물 수용을 보여준다.

6-2. 역사적 배경

대한제국 시기 고종이 서양식 궁전을 건설한 배경은,
근대화 의지와 국제정세 속에서의 생존 전략이었다.


7. 종로 YMCA 회관 – 시민운동의 거점

7-1. 첫 만남

종로 YMCA 회관 앞에 섰을 때,
담백한 외관과 기능적인 창문 배열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안에는 여전히 교육·체육·사회 활동이 이어지고 있었다.

7-2. 사회적 의미

1900년대 초부터 시민 계몽 운동과 사회교육의 중심지로서,
근현대 서울 시민사회의 형성과 직결된 장소다.


서울 근현대 건축물 7선 요약

순번 건물명 건립연도 건축양식 현재 용도 역사적 의미
1 경성방직 사옥 1930년대 산업시설형 벽돌 건물 보존·전시 산업화 초기 증거
2 옛 서울역사 1925년 르네상스 양식 전시장 철도·교통사
3 배재학당 동관 1890년대 말 청벽돌+목조 창틀 교육시설·전시 근대 교육사
4 옛 조선은행 본관 1912년 신고전주의 화폐박물관 금융사
5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 20세기 초 벽돌·목조 혼합 교육시설 여성 교육사
6 덕수궁 석조전 1910년대 네오클래식 전시장 대한제국 근대화
7 종로 YMCA 회관 1900년대 초 기능주의 시민활동 거점 시민운동사
 

서울의 근현대 건축물들은 각기 다른 시기와 목적, 건축 양식을 지녔지만, 공통적으로 ‘서울’이라는 도시의 변화를 증언한다.
이들은 전쟁, 산업화, 개발, 민주화 등 수많은 사회 변동 속에서도 그 자리를 지켰다.
건물은 침묵하지만, 그 속에 남아 있는 벽돌과 기둥, 창문과 계단이 이야기를 대신 전한다.

이번 7곳의 답사를 통해 느낀 것은,
이 건물들이 단순한 옛 건축물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시간의 교차점’이라는 사실이다.
현장에서 발로 걸으며 본 디테일과 공간감은,
책이나 사진으로는 절대 전해지지 않는 생생함이었다.

서울은 여전히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속도 속에서도 보존과 기록의 가치는 더없이 중요하다.
근현대 건축물은 한 세대의 역사와 문화를 품은 ‘살아 있는 교과서’이며,
미래 세대가 우리 시대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다음 번 서울 산책에서도, 나는 여전히 이런 건물들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도시와 사람, 그리고 시간을 동시에 여행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방문한 7곳의 건축물은 모두 서로 다른 시대와 기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서울’이라는 거대한 이야기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중 일부는 잘 보존되어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했고, 어떤 곳은 여전히 과거의 시간 속에 머물러 있었다.
이 차이는 단순히 예산이나 관리 주체의 문제를 넘어, 우리가 과거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근현대 건축물 보존은 단순히 오래된 건물을 남겨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가 자기 역사를 존중하고, 미래 세대가 배울 수 있는 유산을 물려주는 행위다.
서울의 골목과 거리를 채운 이 건물들이 앞으로도 우리 곁에 남아, 도시의 시간과 이야기를 이어가길 바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과거를 지키는 일’이 곧 ‘미래를 준비하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