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단순히 대한민국의 수도가 아니다.
이 도시는 근대화와 산업화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로서 100년 넘게 변화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그 변화의 흔적은 거리 곳곳에 남아 있다.
높게 솟은 빌딩 사이로 고개를 내민 붉은 벽돌 건물, 목재 창틀이 남아 있는 주택, 석조로 지어진 옛 관공서 건물….
이들은 단순한 낡은 건축물이 아니라, 시대의 공기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살아 있는 기록’이다.
서울의 근현대 건축물은 1920년대 경성 시절부터 2020년대의 도시 재생까지,
다양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태어나고, 변형되고, 때로는 사라져갔다.
이 건축물들은 식민지 시절의 긴장감, 해방과 전쟁의 격동, 산업화의 열기, 민주화의 함성을 모두 겪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단순한 ‘과거’를 넘어,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문화적 자산을 발견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서울을 무대로, 근현대 건축물 100년의 기록을 따라가 본다.
직접 걸으며 느낀 현장의 공기와, 복원 현장에서 마주한 장인들의 손길, 그리고 건물에 얽힌 사연까지 담아,
이 도시가 어떻게 근현대사의 무대가 되었는지 풀어내고자 한다.
1. 1920~1930년대 – 경성의 근대 건축 태동기
1-1. 석조 건물의 위엄
서울의 근대 건축은 1920~30년대 경성 시절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대표적인 예가 구 서울역사(1925)와 구 서대문형무소 본관(1923)이다.
석조와 벽돌 조적 구조를 혼합한 이 건물들은 서양식 건축 양식을 도입하면서도,
한국의 기후와 사용 환경에 맞춘 독특한 변형을 보여준다.
직접 서대문형무소의 붉은 벽돌 앞에 섰을 때,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 건물이 풍기는 묵직한 기운이 느껴졌다.
두꺼운 벽과 좁은 창문은 단순한 구조가 아니라,
그 시대의 억압과 감시의 공기를 담고 있었다.
1-2. 금융과 상업의 중심 건물
이 시기에는 은행과 상업 건물도 등장했다.
현재의 우리은행 본점 자리에 있던 조선은행 건물은,
도시의 금융 중심지로서 경성의 경제 활동을 상징했다.
대리석 기둥과 높은 천장, 원형 창은 ‘권위’와 ‘신뢰’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그 시절 경성의 거리를 걷는다고 상상해보자.
전차가 종로를 달리고, 남대문과 서대문 사이로 양복과 모자를 쓴 사람들이 오간다.
길모퉁이에 자리한 붉은 벽돌 건물은 서양식 기둥과 아치형 창을 달고 있다.
나는 자료 사진 속 그 풍경을 오래 들여다본 적이 있다.
건물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근대 도시의 새로운 질서를 상징하는 존재였다.
구 서울역사 안으로 들어가면, 원형 홀의 웅장한 돔 천장이 시선을 압도한다.
벽면의 대리석과 나무 장식은 지금도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다.
이곳에서 1920년대 사람들은 기차를 타고 인천, 부산, 심지어 만주까지 향했을 것이다.
한 노년의 시민은 “그 시절 기차역은 단순한 교통시설이 아니라,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품은 출발점이었다”고 회상했다.
2. 1940~1950년대 – 전쟁과 재건의 건축
2-1. 전쟁이 남긴 상처
6·25 전쟁은 서울의 건축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많은 건물들이 폭격으로 파괴되거나 훼손되었고,
그 자리를 임시 건물과 간이 구조물이 대신했다.
당시의 주택들은 목재와 함석을 급히 조합한 형태가 많았다.
2-2. 재건기의 대표 건물
전쟁 후 재건 과정에서, 일부 근대 건축물은 복구되어 새로운 기능을 맡았다.
예를 들어 덕수궁 석조전은 미군 사령부와 외교 공간으로 활용되었고,
구 서울역은 여전히 교통의 허브 역할을 이어갔다.
현장을 직접 걸어보면, 건물 외벽 곳곳에서 당시의 수리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서울역에서 서대문 방면으로 이동하면, 당시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건물들을 여전히 볼 수 있다.
벽돌 한 장 한 장에 총탄 자국이 남아 있고, 일부는 시멘트로 덧발라진 채 세월을 버텨왔다.
나는 종로구의 한 오래된 건물을 방문했을 때, 2층 목조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와 함께 떠오른 것은, 전쟁 직후 이 건물 안에서 열렸을 회의와 식사, 잠자리였다.
당시 건축은 화려함보다 ‘견디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목재·함석·재활용 벽돌 등 그 시대가 가진 모든 자원을 짜내어 지은 건물들이 많았다.
3. 1960~1980년대 – 산업화와 근대 건축의 확산
3-1. 고층 건물 시대의 시작
서울의 스카이라인은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세운상가(1968)는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전자상가로,
상업과 주거, 제조가 한 건물 안에 공존하는 독특한 복합 건축이었다.
나는 세운상가 옥상에서 바라본 종묘와 도심의 풍경이,
전통과 현대가 한 프레임에 담긴 듯한 장면으로 오래 기억에 남았다.
3-2. 공공건축의 발전
이 시기 건축물 중에는 시청, 국회의사당, 각종 공공청사 등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채택했고,
권위적인 외형을 통해 국가의 발전 의지를 드러냈다.
세운상가에 처음 들어섰을 때 느낀 것은,
이곳이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라 ‘기술의 집합소’였다는 점이다.
라디오 부품, 흑백 TV, 오디오 앰프….
이 건물 안에서는 장사꾼과 기술자, 학생과 연구자가 한데 섞였다.
세운상가 옥상에서 내려다본 종묘의 고즈넉한 기와와,
도심 빌딩의 유리벽이 만들어낸 대비는 지금도 강렬하다.
국회의사당 건립 당시의 기록을 보면,
국가 이미지를 국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철근 콘크리트와 대리석을 대대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 웅장한 돔은 ‘산업화의 자신감’을 건축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4. 1990~2000년대 – 보존과 재생의 모색
4-1. 근현대 건축물 보존 운동의 시작
90년대 후반부터, ‘근대 건축물’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대표적으로 구 서울역사는 2004년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복원 작업을 거쳤다.
복원 현장에서 만난 한 장인은
“단순히 예전 모습으로 돌리는 게 아니라,
당시의 재료와 공법을 그대로 살려야 진정한 복원”이라고 말했다.
4-2. 문화공간으로의 변신
2000년대 들어, 서울의 여러 근현대 건물들이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예를 들어 문화역서울 284는 기차역에서 전시장으로 변신해,
시민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구 서울역사 복원 작업 현장에서 본 목재 창틀은,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나무 조각이었지만,
장인의 손끝에서는 마치 ‘과거의 시간’을 불러오는 열쇠 같았다.
그는 80년 전 쓰였던 창틀의 못을 그대로 재사용하려 애썼고,
“못 하나에도 당시의 기술과 재료가 담겨 있다”는 말을 남겼다.
문화역서울 284가 전시장으로 문을 연 후,
많은 시민들이 다시 그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기차를 타기 위해 서둘러 뛰던 대합실에서,
이제는 예술 작품을 천천히 감상하는 시간이 흐른다.
건물은 기능을 바꿨지만, 그 속의 공기는 여전히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5. 2010년대~현재 – 기록과 체험의 시대
5-1. 시민 참여형 보존
최근에는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보존 프로젝트가 늘었다.
SNS를 통한 기록 공유, 시민 해설 프로그램,
지역 축제 등이 건물 보존과 활용을 동시에 이끌고 있다.
5-2. 건축물과 관광의 연결
근현대 건축물은 이제 서울 관광의 중요한 콘텐츠가 되었다.
종로·중구 일대의 ‘도시 산책 코스’는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인기가 높다.
나는 한 가을날, 덕수궁 돌담길에서 시작해 정동길을 따라 걸으며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여행하는 듯한 시간을 보냈다.
최근 방문한 정동길의 한 해설 프로그램에서,
해설사는 덕수궁 돌담길의 건물 하나하나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냈다.
단순히 ‘옛 건물’로 보이던 공간이,
누군가의 유년 시절 놀이터였고, 또 다른 이에게는 생계를 지탱한 직장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길 위에서 발걸음이 훨씬 느려졌다.
SNS와 유튜브 덕분에,
서울의 근현대 건축물은 이제 전 세계 사람들에게 동시에 소개될 수 있다.
과거에는 학자나 전문가만 기록하던 것을,
이제는 시민 누구나 스마트폰 카메라와 글로 남기고 있다.
이것이 바로 100년 전 건축물과 100년 뒤의 세대를 연결하는 ‘디지털 기록의 다리’다.
근현대 건축물 100년의 기록 내용 요약
시기 | 대표 건출물 | 특징 | 사회적 의미 |
1920~30년대 | 구 서울역사, 서대문형무소 | 석조·벽돌, 서양식 도입 | 근대 도시 구조의 시작 |
1940~50년대 | 덕수궁 석조전, 구 서울역 | 전쟁 피해 복구 | 재건과 생존의 상징 |
1960~80년대 | 세운상가, 국회의사당 | 철근 콘크리트, 대규모 건물 | 산업화·국가 발전의 상징 |
1990~2000년대 | 구 서울역사 복원, 문화역서울 284 | 보존·재생 |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 |
2010년대~현재 | 도시 산책 코스, 시민 보존 활동 | 기록·참여 중심 | 관광·지역 활성화 |
서울의 근현대 건축물 100년의 기록은 단순한 건축 연대기가 아니다.
그것은 전쟁과 재건,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문화적 성숙을 함께 겪어온
이 도시의 ‘시간 지도’다.
현장에서 느낀 바람, 벽돌의 촉감, 복원 장인의 손길,
그리고 건물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단순한 생활 공간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역사 박물관으로 만든다.
앞으로의 100년은, 이 건물들을 어떻게 지키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보존은 과거를 붙드는 행위가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자산을 준비하는 일이다.
서울의 근현대 건축물은 이제 기록과 체험, 그리고 참여 속에서
새로운 100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한국의 건축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폐허가 된 근현대 건축물, 시간을 거슬러보다 (0) | 2025.08.19 |
---|---|
근현대 건축물과 지역 관광의 가능성 (3) | 2025.08.18 |
직접 찾아간 서울 근현대 건축물 7선 (2) | 2025.08.17 |
근현대 건축물 복원 현장을 직접 가다 (2) | 2025.08.16 |
근현대 건축물의 흔적을 따라 떠나는 기차 여행 (0) | 2025.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