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흔히 “오래된 건물은 그냥 낡은 것”이라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낡았다는 이유만으로 건축물을 없앤다면,
우리는 도시가 품고 있던 수십 년, 혹은 백 년의 시간을 함께 지우게 된다.
한국의 근현대 건축물은 단지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외면받아왔다.
그러나 조금만 시선을 달리해 보면,
이들 건물 하나하나가 격동의 역사, 사회 변화, 생활 문화, 공간 구조의 진화를 담은
고유한 ‘건축 언어’이자 문화적 기억의 창고임을 알 수 있다.
1900년대 초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은 식민 지배와 해방, 전쟁, 산업화, 도시화라는 커다란 물결을 겪었다.
그 시기의 건축물은 단지 시멘트와 벽돌, 기와로 지어진 구조물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사고방식, 미의식, 기능적 요구를 가장 정직하게 담아낸 형태다.
이 글에서는 건축사적 관점에서 근현대 건축물이 갖는 가치와,
그 건축물들이 어떻게 문화유산으로 이어져야 하는지,
그리고 내가 직접 마주한 사례들을 통해
‘보존’이 아닌 ‘이해’를 전제로 한 문화적 접근의 필요성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한국 근현대 건축의 시작과 맥락
1-1. 일제강점기 건축 – 통제와 식민 정책의 물리적 흔적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일본은 조선의 도시를 일본식 근대 도시로 바꾸기 위해
관공서, 학교, 철도역, 관사 등을 대거 건립했다.
건축 양식은 서양의 르네상스, 신고전주의를 바탕으로 일본식 기법이 가미되었다.
대표적 예:
- 서울 중앙청(현 헌정기념관)
- 서울역사 (1925년 개관, 루네상스 양식)
- 군산 세관 (영국식 근대 건축 영향을 받은 붉은 벽돌 건물)
나는 군산에 직접 방문해 이들 건물을 봤을 때,
장엄하고 균형 잡힌 외관 속에 권력과 지배의 시각적 설계가 숨어 있다는 걸 느꼈다.
이러한 건축물은 단순히 '예쁘다'는 감상보다는,
당시 정치적 메시지를 해석하며 바라봐야 하는 역사 텍스트다.
1-2. 해방 이후의 혼종성과 실험
해방 후부터 1960년대까지는 한국 건축이 본격적으로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였다.
외세의 영향을 탈피하려는 시도,
그러나 경제적 제약과 기능 중심의 공공건축 확대 등으로
양식과 기술, 자재의 혼합이 두드러졌다.
이 시기의 대표적 건축물은
- 종로 YMCA
- 대전 구 철도청 사택
- 대구의 미국식 선교사 주택 등
구조는 서양식, 자재는 국산, 배치는 일본식,
이 모든 것이 ‘이유 있는 혼란’이었던 시기였다.
이 시기의 건축물은 ‘순수양식’이라는 개념보다는
한국 사회의 과도기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건축학적 실험장이었다.
2. 근현대 건축물이 지닌 건축사적 가치
2-1. 공간 구성 방식의 전환
전통 한옥과 달리 근현대 건축물에서는
- 복도식 배치
- 분리된 사적·공적 공간
- 생활 편의성 중심의 구조 설계
가 눈에 띄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전주의 한 도시형 한옥은 1930년대 도시 확장기에 지어진 건물로,
전통적 대청마루 대신 실내 거실 공간을 배치하고,
화장실이 실내로 들어오며 ‘생활공간의 통합화’가 이루어졌다.
한 건물 내부를 보면 그 시대의 주거 방식이 바뀐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설계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당시 한국 사회의 생활양식 변화를 공간적으로 반영한 건축사적 단서다.
2-2. 재료와 기술의 기록으로서의 가치
1950~70년대 건축물은 대부분 국내 생산 자재와 기술자에 의해 지어졌다.
그래서 콘크리트 구조물에도 지역 특색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 인천의 배다리 인쇄소는 국산 철근과 손모래로 벽체를 만들었고
- 대구의 옛 병원 건물은 석탄난방 구조를 살리기 위해
굴뚝과 연통 구조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재료 하나, 시공 방식 하나가 모두 기술 발전의 궤적이다.
이처럼 건축물은 단지 형상이 아닌 기술사(技術史)의 표본이기도 하다.
3. 문화적 유산으로서의 의미
3-1. 기억의 장소로서의 공간
문화유산은 물리적 구조와 함께 감정과 기억이 담긴 장소성을 가진다.
근현대 건축물 중에는
- 독립운동과 관련된 건물
- 민주화 운동의 본부
- 지역 공동체의 모임 공간 등
정신적 자산이 함께 녹아든 공간이 많다.
서울 명륜동에 있는 한 학교 건물은
1960년대 학생운동이 시작된 장소였으며,
지금은 리모델링하여 시민 강좌가 열리는 공유공간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 공간에 앉아 강연을 들으며,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경험을 했다.
공간이 기억을 품고, 기억이 공간을 의미 있게 만든다.
3-2. 지역 정체성과의 연결
근현대 건축물은 대개 ‘지역’에 맞춰 설계되었기에
그 지역의 기후, 경제, 문화, 기능을 그대로 반영한다.
예:
- 부산 초량동의 적산가옥 → 일본식 상업 구조
- 전북 군산의 선교사 주택 → 외국인 의료봉사자의 거주처
- 충남 논산의 구사옥 → 농업협동조합의 중심 건물
“그 동네의 건축물을 보면,
그 지역이 어떤 정체성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문화유산으로서 근현대 건축물이 가지는 공간 기반의 지역성이다.
4. 체험과 마주침을 통한 재발견
4-1. 대구 계산동 답사기
2024년 봄, 나는 대구 계산동 일대를 따라 근대 건축 유산 답사에 참여했다.
선교사 주택, 옛 교회, 병원, 학교까지
100년 이상 된 건물들이 도심 안에 조용히 남아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주택의 손잡이였다.
그 손잡이는 아마 수천 번, 수만 번의 손길이 닿았을 것이다.
나는 그걸 만지는 순간, 이 공간이 단지 ‘보존된 대상’이 아니라,
수많은 삶이 오간 살아 있는 공간이라는 걸 실감했다.
체험은 기록을 넘어서 공간에 대한 감정적 연결을 만들어준다.
4-2. 활용과 재생, 가치의 확장
지금은 많은 근현대 건축물이
- 카페
- 전시관
- 시민공간
으로 활용되며
단절된 과거를 이어주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적 유산은 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참여하고 경험하며 의미를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진짜 유산이 된다.
한국의 근현대 건축물의 가치 정리 요약
건축사적 가치 | 양식의 혼종, 공간 구성 방식의 진화 | 서울 중앙청, 도시형 한옥 |
기술적 가치 | 자재와 시공법을 통한 기술사 | 인천 인쇄소, 대구 병원 건물 |
문화유산적 의미 | 기억의 장소, 지역 정체성 상징 | 군산 세관, 초량 적산가옥 |
활용 가능성 | 시민공간으로의 전환 가능 | 책방, 공유공간, 전시장 등 |
근현대 건축물은 우리 사회가 겪어온 복잡한 시간의 단면을 보여주는 건축적 텍스트다.
그 안에는 정치와 경제, 생활과 문화, 개인과 공동체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 건축물들을 단지 낡았다는 이유로 지나치거나 철거해왔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바꾸면, 그 공간은
우리에게 정체성과 역사, 그리고 미래의 가능성을 묻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건축물은 그 자체로 말을 하지 않지만,
우리가 읽고 듣고 체험하는 순간,
그 공간은 살아 있는 유산이 된다.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았더라도,
우리가 기억하고 존중하며 활용할 때,
그 건축물은 공식적인 유산 못지않은 힘을 발휘하게 된다.
이제는 근현대 건축물을 단지 ‘과거의 것’이 아니라
현재를 구성하고 미래로 이끄는 살아 있는 자산으로 바라보아야 할 때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관심과 기록, 경험 속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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