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건축물

근현대 건축물과 근대 교육기관의 흔적

헤이 봄 2025. 8. 13. 03:00

도시의 오래된 길목을 걷다 보면,
기왓장 사이로 녹이 슨 종탑이나 붉은 벽돌의 강당이 불쑥 나타나곤 한다.
그곳은 더 이상 수업 종소리가 울리지 않는 옛 학교 건물일 수 있다.
근현대 시기, 특히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까지
한국의 교육기관은 단순한 ‘학습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근대 문물의 통로였고, 지역 사회의 중심지였으며,
당시의 정치·사회·문화 변화를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현장이었다.

나는 지난 몇 년간 전국의 오래된 학교와 관련 건축물을 찾아다녔다.
평양에서 시작된 선교사 학교 건물,
서울의 붉은 벽돌 사범학교,
전주의 한옥 양식과 서양식이 절묘하게 섞인 사립여학교까지.
이 건물들은 각 시대의 교육 철학과 사회적 역할을 건축의 형태로 담아냈다.

하지만 이런 건물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개발이라는 거대한 흐름,
그리고 ‘낡았다’는 이유로 철거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흔적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는 중이다.

이 글에서는 근현대 건축물 가운데 근대 교육기관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 본다.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단순한 건축사 이상의 이야기
교육을 통해 근대화로 나아간 한국 사회의 발자취를 만나게 될 것이다.

한국의 근현대 건축물


1. 근대 교육기관의 태동과 건축 양식

1-1. 선교사 학교와 서양식 건축의 도입

한국의 근대 교육기관 건물 대부분은 선교사 활동과 함께 시작됐다.
1880~1900년대, 개항장을 중심으로 설립된 미션스쿨들은
붉은 벽돌, 아치형 창문, 목조 내부 계단 같은 서양 건축 양식을 도입했다.

내가 군산에 갔을 때, 한 오래된 교회 건물 옆에서
작은 벽돌 건물을 발견했다.
그곳은 1909년 세워진 여학교 교사였다.
나무 바닥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거렸지만,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빛은 한 세기 전 학생들이 보았을 것과 같은 각도로 비쳤다.
그 순간, 건물이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
시대를 연결하는 매개라는 것을 실감했다.

1-2. 관립학교와 절충식 건축

1910년대 이후, 조선총독부는 관립학교를 세우며
일본식 목조건물과 서양식 구조를 절충한 건축 양식을 도입했다.
이 시기의 학교들은

  • 긴 복도
  • 대칭 구조
  • 기와 지붕과 서양식 창호의 혼합
    이라는 특징을 가졌다.

전북 전주의 한 구 사범학교 건물은
외관은 기와지붕이지만, 내부는 서양식 강당 구조였다.
당시 교육 제도가 식민지 통치와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 시기의 건물은 식민지 시대의 문화 혼종성을 잘 드러낸다.


2. 근현대 교육기관 건물의 상징성과 기능

2-1. 지역 사회의 문화·정치 거점

근대 교육기관은 단순한 수업 공간이 아니었다.
교사에서 연극이 열리고, 운동장에서 집회가 열렸으며,
강당은 지역 주민의 회의실이 되었다.

목포의 한 구 여자고등학교 강당은
일제강점기 말기 독립운동 자금 모금 장소로 쓰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 건물에 들어섰을 때, 벽에 남은 낡은 게시판과
마룻바닥에 새겨진 ‘1938’이라는 숫자가 당시의 공기를 전해주었다.

2-2. 건축 자체의 교육적 메시지

건물의 설계와 재료는 교육 철학과도 연결됐다.
예를 들어, 넓은 창문과 높은 천장은
‘밝고 열린 교육’을 상징했다.
또한 운동장과 강당을 강조한 구조는
‘신체와 정신의 균형 발전’을 반영했다.

서울의 옛 경성사범학교 본관에 서면
정면에 위치한 중앙 계단과 그 위에 자리한 시계탑이 눈에 띈다.
시계탑은 학생들에게 ‘시간 엄수’라는 생활 규율을 끊임없이 각인시켰다.


3. 교육기관 건물 보존의 현실

3-1. 개발 압력과 철거 위기

근현대 교육기관 건물은 대개 도심에 위치해
토지 가치가 높다.
그 결과, 철거 후 재개발 대상이 되기 쉽다.

대전의 한 옛 상업학교 건물은
복원 논의가 있었지만, 고층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다.
나는 그곳 철거 전날, 비어 있는 교실에서
칠판에 남아 있던 수학 문제를 보았다.
‘X=3일 때…’로 시작되는 문제는 풀리지 못한 채 먼지가 쌓여 있었다.

3-2. 보존을 위한 행정 절차의 한계

지방 문화재로 등록하려면

  • 역사적 가치 입증
  • 원형 보존 상태 확인
  • 소유주 동의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하지만 건물 노후로 인해 안전 문제나 유지비 부담이 커
    소유주가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4. 현장에서 만난 보존과 활용 사례

4-1. 성공 사례 – 전주 신흥학교

전주는 신흥학교 본관을
문화재로 등록하고, 내부를 교육 역사관으로 리모델링했다.
학생들이 쓰던 책상과 교과서, 졸업앨범을 전시해
시민과 관광객이 근대 교육의 흔적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했다.

4-2. 창의적 활용 – 서울 배화여고 구관

서울의 배화여고 구관은 현재 전시·공연 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내부는 원형을 최대한 살리면서
현대적 조명을 설치해 다양한 문화 행사를 진행한다.
이곳에서 열리는 클래식 콘서트를 들으면,
100년 전 학생들이 부르던 교가가 어딘가에서 울리는 듯한 착각이 든다.


5. 우리가 지켜야 할 이유

5-1. 교육과 건축이 만난 역사적 증거물

근대 교육기관 건물은
교육 제도, 사회 변화, 건축 기술이 동시에 기록된 자료다.
이것이 사라지면, 문헌으로만은 복원할 수 없는 시대의 공기와 감각이 함께 사라진다.

5-2. 미래 세대를 위한 ‘살아 있는 교과서’

보존된 건물은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직접 보고 느끼는’ 기회를 준다.
단순히 책에서 배우는 것보다 훨씬 강렬한 교육 효과를 제공한다.


근현대 교육기관 건축물의 가치와 보존 요약

구분 내용 사례 기대 효과
역사적 가치 근대화와 교육사 기록 전주 신흥학교 시대 이해
건축적 가치 서양·일본식 절충, 상징적 구조 경성사범학교 건축사 연구
사회문화적 가치 지역 공동체 중심 역할 목포 구 여학교 강당 문화재 활용
보존 필요성 교육·건축·역사 동시 기록 군산 미션스쿨 교사 세대 간 기억 전승
활용 가능성 박물관, 전시, 공연, 교육 배화여고 구관 관광·문화 산업
 

근현대 교육기관 건물은 단순히 오래된 학교 건물이 아니다.
그 안에는 한 시대의 교육 철학, 사회 구조, 건축 기술이 동시에 녹아 있다.
그 건물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지금도 유효하다.
교육은 사회를 바꾸고, 건축은 그 교육의 그릇이 된다.

나는 여러 현장을 다니며
철거 직전의 교사와 보존에 성공한 학교 건물을 모두 보았다.
차이를 만든 것은 조기 발견, 기록, 그리고 활용 계획이었다.
이 요소들이 갖춰지면, 건물은 폐허가 아닌 문화유산으로 거듭난다.

앞으로 근현대 교육기관의 흔적을 지키는 일은
단순한 과거 보존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역사를 직접 체험하게 하는’ 교육의 연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배움’과 ‘기억’을 함께 지켜낼 수 있다.